대출 끝에 서 있는 노총각
저녁 7시가 막 지난 시각, 셔츠 소매를 반쯤 걷은 손님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출근용 백팩을 메었던 자국이 어깨에 깊게 눌려 있었고,
슈트차림은 단정하고 차분했지만, 눈빛엔 문 앞에서 꽤 망설였던 게 느껴졌다.
“전세 보러 오셨어요?”
“아뇨, 매매요. 작은 투룸 정도… 3억 아래면 좋고요.”
순간, 내가 먼저 전세라고 물은 게 괜히 마음에 걸렸다.
꼭 그럴 거라고 단정 지은 것도 아닌데,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가버렸다.
3억 아래. 요즘 이 동네에서 그 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손님은 알고 있을까 싶었다.
“혹시 대출은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세요?”
“한도까지요. 뭐… 되는 데까지는 다 끌어봐야죠.”
차분하지만 어딘가 단단하게 굳은 말투였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컴퓨터를 켰다.
“혹시 실거주 목적이세요?”
“네. 지금은 월세 사는데, 이젠 좀 제 집에서 살고 싶어서요.
솔직히… 전세는 무섭더라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처럼 전세 사기 뉴스가 쏟아질 때면,
등기부등본 하나로 안심할 수 없다는 말을
손님들에게 더 자주 듣게 된다.
“혹시… 당한 적 있으세요?”
“아뇨. 다행히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어느 순간부터 괜히 불안하더라고요.
내 돈이 남의 집에 묶여 있다는 게.”
조금씩 손님의 이야기가 풀리기 시작했다.
회사는 근처에 있고, 나이는 마흔둘. 결혼은 아직이고,
부모님은 지방에 계신다 했다.
“요즘 결혼하는 사람들 보면,
대출 한도랑 금리부터 확인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전 아직도 결혼을 못 한 거겠죠.”
“진짜 내 집 갖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스물여섯부터 일했는데, 모아놓은 건 별로 없고…”
손님은 말끝을 흐리며 창밖을 바라봤다.
평소엔 그저 좋게만 보이던 북한산 능선이,
그 순간만큼은 유난히 멀어 보였다.
“혹시 이 근처에… 그나마 조용한 데 있어요?
출퇴근도 괜찮고, 산책 같은 거 하기 좋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매물 하나를 클릭했다.
“여기 어때요. 신축 빌라예요.
가격도 딱 3억 초반이고, 구조도 잘 빠졌어요.
산책로도 가까워요.”
그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화면을 들여다봤다.
“진짜요? 이런 집이 이 가격에 나와요?”
그 순간, 내가 키보드 위에서 손을 멈췄다.
“보기 힘든 급매죠.
주유소 사장님이 아들 신혼집으로 미리 사둔 건데,
결혼식 한 달 전에 파혼해서
빨리 정리하고 싶다고 싸게 내놨어요.”
손님은 맘에 드는 듯 한참 들여다보다가
“하… 딱 3억이었으면 바로 계약했을 텐데…”
하고는, 앞으로 빼고 있던 몸을 힘없이 뒤로 넘겼다.
그날, 그는 조용히 일어나
“대출 좀 알아보고 다시 올게요,”
라고 말하며 명함을 챙겨갔다.
계약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한동안 퇴근 시간이 되면, 그 손님이 생각났다.
대출 한도 끝에 있는 마음이 뭘까.
어쩌면, 가진 걸 모두 끌어모아도 모자랄 걸 알면서
그래도 한 번은 살아보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