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아들에게 뺏긴 내 집

뛰는 세입자 위에 나는 집주인

by 정서한


“결국 집주인 아들이 들어온대요.”


손님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당당하게 세입자의 권리를 말하던 사람이었다.


처음 집주인이 전화를 걸어와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했을 때, 손님은 대차게 대응했다고 한다.

“법으로 5퍼센트 이상은 못 올리는 거 아시죠? 저도 뉴스는 봐요.”


집주인은 당황한 듯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고, 며칠 뒤 다시 전화가 왔단다.


“그러면 어쩔 수 없겠네요. 우리 아들이 해외에서 귀국해서 이 집에 들어와 살기로 했어요. 계약 기간까지 짐 빼주세요.”


손님은 이 말을 듣고 머리가 새하얘졌다고 했다.


“5퍼센트 법 얘기를 하니까 바로 아들이 들어온다고 하네요. 갑자기 귀국이라니,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죠?”


나는 손님의 말에 뭐라 대꾸할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전세금을 올리거나 세입자를 내보내는 집주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계약서 구석의 작은 글자들까지 꼼꼼히 챙겨봤는데도, 결국 빠져나갈 구멍은 있었다.


세입자 보호법이 있어도, 집주인의 가족이 들어온다고 하면 딱히 방법이 없다. 가끔 부동산은 법이 아니라 현실에 맞춰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 집에 들어갈 때 정말 좋았거든요. 깨끗하고 조용하고... 5퍼센트만 올려주면 2년은 더 살 수 있겠다 싶었어요.”


손님의 표정에는 실망과 허탈함이 가득했다.


“전입신고하고 확정일자 받고, 이번에는 정말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건가 봐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 비슷한 말을 건넸다.


“최근에는 이런 일이 정말 많아요. 법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 세입자 입장에선 불리하죠.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빨리 다른 집 찾아보는 게 최선이에요.”


손님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 또 한동안 집 보러 다녀야겠네요. 주말마다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모르겠어요.”


나는 속으로 공감했다. 요즘 들어 부동산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피곤해 보인다.


신용 문제로 대출이 막히기도 하고,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기도 하며,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 연장이 무산되기도 한다.


잘 맞는 사람과 잘 맞는 집이 만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도 아주 가끔, 딱 들어맞는 순간을 본다.

나는 그 장면을 또 한 번 마주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묻는다.

“혹시, 이 집은 어때요?”


몇 번씩 하는 말이지만, 이번 집만은 잘 맞기를 바라는 건 늘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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