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를 동정(同情)한다.
물론 스스로 그 길을 택한 소수의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완벽주의자는 정답을 강요받는 삶에 착실하게 따라가고자 하는 어딘가 한 군데 약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학업 성취에 대한 욕구가 크지 않았던 내게, 시험 점수란건 '칭찬'이라는 당근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의 양육자는 95점짜리 시험지를 가져오면 시큰둥하게 "왜 1개를 틀렸어?"를 묻는 미지근한 사람이었다. '아 100점이 아니면 소용없구나.'라는 생각으로 그 뒤로도 1개라도 틀린 시험지는 내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수재이거나, 정답만 고르며 살아온 사람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오답노트도 만들지 않고 '그래, 이번 시험이 이상했어.'라고 자기 위안을 해버리는 쪽에 가까웠지. 더 나아가, 그 시험지를 만든 사람과 옆에서 시험을 본 사람을 탓하는 부류들. 기묘하게도 이런 구조 속에서 신통치 않은 소프트웨어로, 어쩌다 보니 그들보다는 정답을 고르는 길을 걸었다. 하지만 취업, 연애, 결혼 같은 '열심히'로는 커버 치기 힘들고 정답을 고르기도 어려웠던 나는 그때부터 다시 그들에게 '실패자'로 둔갑했다.
카프카의 '변신'에서처럼, 어느 날 나는 남들에게 보일 수 없는 혐오스러운 무언가가 된 것 같았다. 변신의 주인공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행복한 번데기였다. 마음껏 벗어나고 일탈하고 기만하며 희열을 느꼈다. 이대로라면 나비든 뭐든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그냥 거대한 해충처럼 느껴졌다. 본인들의 오답노트를 작성하는 대신, 누군가 만만하고 통제하기 쉬운 존재에게 정답을 강요하는 게 더 쉬웠던 걸까.
그 뒤로 다시 정답에 가까운, 하지만 100점은 아닌 85점 정도의 궤도에 올랐다. 회사에 가도 마치 '정답 망령'이 들린 것 마냥. 티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뭐든 잘 풀리지 않으면 내 노력의 부족함을 탓하고 날 미워하고 혐오했다. 인턴시절 워커홀릭 상사를 만나 모두가 퇴근하고도, 잔업이 있지 않아도 10시, 11시까지 나를 몰아붙였다. 정직원 전환에는 도움이 되었을지 몰라도 그때 망가진 체력과 면역력은 지금까지도 영향이 있는 듯하다. 그 뒤로도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100점이 아니면 소용없어'라며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항상 열중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작 그 순간에는 회피하다 20점짜리 시험지를 내고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머리가 복잡했다. 나를 괴롭히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지금은, 글쎄 아직 현재 진행 중이지만 언제부턴가 내가 100점짜리를 내는 것과 상관없는 것들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이후부터는 조금은 내려놓게 된 것 같다. 무엇보다 너무 과도하게 팽팽 돌아간 내 CPU가 과열되어 고장 날 수도 있다는 걸 안 이후부터. 내가 죽도록 노력해도 안될 일은 되지 않고,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 마인드로 임한 일들은 말도 안 되게 잘 풀리는 걸 경험하고는.
기타 줄도 너무 세게 조이면 '핑-'하고 끊겨버리는 것처럼.
조금은 느슨해져도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