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한줄 서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갸비 Jan 14. 2023

‘슬프면서 좋은 거’ 삶의 모순을 알아간다는 것

권여선 「손톱」

‘슬프면서 좋은 거’란 대체로 슬픈 것.


권여선의 단편소설 「손톱」은 소희가 ‘슬프면서 좋은 거’를 어렴풋이 알아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대체로 소희는 슬프고 또 슬퍼서, 소설을 읽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기도 했다.


20대 초반 소희는 혼자다. 가족이라고는 배 다른 언니 본희와 소희가 중학생 때 언니 이름으로 빌려둔 돈을 들고 집을 나가 연락이 끊긴 엄마뿐이다. 엄마가 떠난 후 소희를 돌보던 본희는 소희가 성인이 되자 소희 이름으로 빌려둔 돈을 들고 집을 나가 연락이 끊겼다. 엄마가 본희와 여동생을 떠났듯 본희도 소희를 떠난 것이다.


빚만 남은 소희는 대학도 못 가고 쇼핑몰 판매사원으로 일한다. 최저시급에 불과한 월급을 받으며 일한다. 빚은 빨라도 20대 중후반이나 돼야 갚을 것 같다. 소희는 하루 중 햇빛을 보는 통근버스 타는 시간이 가장 좋다. 이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쇼핑몰 안에 있어야 한다. 햇빛을 볼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러던 하루 소희는 상자를 들다가, 상자를 고정하던 쇠 구조물에 손톱이 끼여 반토막 난다. 발단은 같이 일하던 민경 언니가 엄마랑 무언가를 상의했다고 한 말이었다. 소희는 대체 엄마랑 상의한다는 게 어떤 말인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엄마는 상의없이 딸에게 빚만 남기고 도망가는 존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떠난 엄마 생각에 신경이 쏠린 나머지 소희는 실수를 하고 손톱을 다친다.


소희는 급히 병원에 가고, 다치고서야 겨우 한낮의 태양을 본다. 소희는 이 일을 두고 ‘슬프면서 좋다’고 한다. 손톱을 다쳐 슬프지만 햇빛을 봐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 왜 이런 ‘슬프면서 좋은 거’가 있는지는 모른다.


소설 속에는 소희가 ‘슬프면서 좋은 거’를 느끼는 여러 에피소드가 있다. 좋은 것도 있다고는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대체로 다 슬프다. 애처롭고 안쓰럽다. 소설 속 소희를 보는 내내 마음이 어려웠다. 아픈데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힘든데도 힘들다고 차마 입 밖으로 소리 내지 못하는 소희가 안타까웠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꿍하니 자기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고 지내는 분들이 종종 있다. 이때껏 대체 왜 저러지라며 답답하게 봤다. 반성한다. 우리 주변에는 입이 있어도 차마 말하지 못할 사연이 있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서로 다름을, 표현 방식조차도 다름을 미처 살피지 못했다.


전체적인 글의 톤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나는 솔로, 12기 모쏠특집 등장인물들을 너무 답답하게만 여기지는 말아야겠다는 자그마한 다짐을 해본다. 돌이켜보니 나는 솔로 12기 모쏠특집 등장인물들 역시 ‘슬프면서 좋은 거’에 가깝지 않나 싶다. 입이 있어도 차마 입 밖으로 슬픔과 어려움을 꺼내지 못하고, 해서 대체로 슬플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재벌집 막내아들 작가는 이 한국화 전시를 보길 바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