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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31. 2016

자이뿌르 가는 기차에서 떠오른 첫사랑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카일은 날 필연적인 고민에 빠뜨렸다.

 델리에서 자이뿌르로 가는 새벽기차를 탔다. 그렇게도 분주하고 정신없었던 빠하르간지 여행자 거리도 새벽에는 한산했다. 새벽 공기와 함께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떠돌이 개들의 하품과 부지런한 릭샤 드라이버가 돌아다닐 그쯔음, 우리는 기차를 타러 델리 역으로 향했다.


기차를 기다리는데 동양인 한 명이 보였다. 왠지 낯선 땅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은 반가우면서도 반갑지 않다. 반가운 것은 동질감을 느껴서이고 반갑지 않은 이유는 나의 독특성이 사라져서일 것이다. 아무튼 한국인 같이 생긴 동양인을 피해서 기차를 탔다. 좌석번호를 확인하고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그의 모습이 보였다. 일단 서로 너무 피곤한 터라 앉아서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그의 머리에 큰 비듬이 있는 것이 보였다. 3 좌석이 나란히 있는 기차에서 그는 창가에 앉고 나는 중간에 그리고 같이 간 경수는 오른쪽에 앉았다. 내가 자려고 하는데 그의 머리가 자꾸만 내 어깨로 향했다. 나는 '아이씨'라고 하며 약간의 저항을 하였지만 그는 이미 깊게 잠들어있었다. 나는 그냥 손수건으로 내 눈을 가리고 잠들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기차에서는 비스킷과 차를 나눠주었다. 나는 깊게 잠들어있는 그를 흔들어 깨웠다. '저기요! 일어나세요. 저기요!'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잠에서 깨워 나를 보았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can you speak english?' 알고 보니 그는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던 미국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카일(kyle). 그는 태국에서 홍콩에서 한두 학기 정도 공부를 하고 인도를 여행 중이라고 했다. 미국인이라고 하기에 미국 여행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역사와 종교를 주제로 미국에 볼 만한 것이  있나요?"라고 물어보자, 사실은 미국은 역사가 기껏 해봐야 200년 정도이기 때문에 역사는 잘 모르겠지만, 종교에 관해서는 유타주에 있는 몰몬이 굉장히 흥미로울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몰몬교도들은 잘생긴 청년 둘이서 정장을 입고 돌아다니면서 영어 공부를 하자고 한 뒤에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사실 그들이 기독교의 한 분파이자, 성경이 아닌 모르몬경을 본다는 것 외에는 그들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내게 몰몬교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몰몬교는 요셉 스미스라는 사람이 하나님께 직통 계시를 받아서 생겨난 종교라고 한다. 그들이 경전으로 삼는 것은 구약성경의 일부와 요셉 스미스가 쓴 모르몬경인데, 이들은 굉장히 제한된 공동체 생활을 하며 규칙적인 생활을 강조한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은 술을 마시지 않고 뜨거운 음료나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모르몬경에 그렇게 쓰여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물과 차가운 음료만 먹을 수 있다. 이는 흡사 유대인들의 율법과도 같아 보인다. 몰몬교도들은 5살이나 6살 즈음에 서로 약혼을 하고 20살이 되면 결혼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들은 일부일처제가 아닌 일부다처제 형태의 결혼 생활을 한다. 한국인들에게는 어쩌면 문화적인 반감을 살 수도 있는 것 같다.


나는 기독교인들이 여기저기서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키거나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많이 보았지만 몰몬교도들이 사고를 쳐서 어떻게 됐다더라 라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그렇게 큰 존재감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몰몬교도들이 생활에 있어서 청렴하고 윤리적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그들이 뜨거운 커피나 차를 마시지 않는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과 같은 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근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 안 마시는 내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는 이상하고 불쌍해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꾸어서 생각해보았다. 내가 때로 술을 마셔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처럼, 몰몬교도들도 따뜻한 커피나 차를 마셔보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어릴 적부터 몰몬 교도 가 아닌 커피와 차를 마시다가 안마 시계 된 사람들은 더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아내려고 하는 그들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대견해 보인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교회 공동체의 규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교회 규칙이 이상하거나 거북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교회의 규칙을 무조건적으로 강요하는  것보다는 그 규칙의 배경과 지켜야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몰몬교도들은 왜 뜨거운 음료를 마시지 않을까? 카페인을 마시지 않는 것을 보아선 카페인을 마약류로 취급하는 것 같다.


유타주를 여행하는 것을 추천하는 카일의 권유 때문에 첫사랑이 생각이 났다. 학창시절 5년 동안  짝사랑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고백하는 족족 차여버리곤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9번째 차이는 순간 내가 얼마나 싫었으면 9번이나 찰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상대방에 대한 측은함이 들어서  그만두었다. 10번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주변의 충고도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9번 차인 놈이라고 소문이 났다. 심지어 옆 학교에 까지 소문이 퍼져서 나는 우리 동네에서 한 여자에게 9번이나 차인 놈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5년이란 기간 동안 그것 때문에 행복했다. 그걸로 됐다.


나는 미션스쿨을 가기 위해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가 아닌 조금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를 갔다. 하지만 살던 동네는 여전히 중학교 친구들이 살던 동네와 비슷했기에 근처에 있던 고등학교로 가끔 놀러 갔다. 그리고 그곳엔 그녀가 있었다. 포기했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그녀를 내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쿨하게 놔줄 거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마음속의 찌질한 미련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친구를 만나러 갔던 그때 슬쩍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물어보기엔 좀 그렇고 가만히 있었는데 친구들과 밥을 먹다가 한 친구가 내게 말을 했다. "야 네가 좋아하는 걔 호준가 미국으로 유학 갔대." 더 이상 얼굴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꽤나 좌절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중에 인연이 되면 볼 수 있겠지. 괜찮아." 


괜찮긴. 나중에 그녀를 찾으려고 보니까 호주와 미국은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호주와 미국 중에 하나라고 해도 워낙 땅덩이가 큰 나라들이라서 그녀를 찾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는 일과 같았다. SNS의 힘을 빌리려고 해보아도 찾지 못했고, 아는 사람들을 통해 안부를 물어보아도 유학 간 이후에 연락이 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포기했었다. 그런데 여행을 출발하기 전, 무심코 찾아본 페이스북 친구 목록에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유타주에 살고 있었다. 나는 머릿속에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그려보았다. 그녀는 한인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교회를 갔다가 우연히 만나는 척을 해볼까?' 아니면 '미리 연락을 하고 찾아가볼까?' 등의 여러 생각이 여행 출발 전 내 머릿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여행의 분주함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는데 카일이 다시 내 머릿속을 뒤집어 놓았다. 유타주를 찾아갈 것인가 말 것인가. 여전히 머릿속은 고민들로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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