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입성

by 서장석

2025년 7월 16일 제헌절 전날 국회에 갔다.

병점서 전철을 타고 노량진에서 9호선으로 환승, 국회의사당역에서 내렸다. 6번 출구로 나가기 위해 부지런히 걸었고 출구를 발견. 30m 정도 되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지하 세계에서 드디어 탈출 빛을 얻었다. 나와보니 바깥은 비가,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을 펴고 출발 국회 입구에서 경찰관에게 의원회관의 위치를 질문하자 손짓을 통해 왼쪽에 있는 건물로 안내해 준다. 나는 국회를 머리털 나고 처음 와 본다. 그동안 숱하게 TV나 각종 매스컴을 통해 국회의사당 본관의 모습을 봐 왔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라서 생경하였다. 이곳이 역사의 현장이구나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새로워졌다. 지난 계엄 사건을 되돌려 놓은 역사의, 시민들의 자유의지가 불 뿜었던 현장이라 생각하니 입구부터 겸손해졌다.

오늘 국회의원회관에 온 이유는 기술 관련 세미나가 있다고 하여 참관 신청을 하였기 때문이다. 의원회관에 도착하여 입장 절차를 밟았다. 방문 신청서를 작성하고 신분증을 첨부하여 제출한다. 관계자분이 방문 장소가 어디냐고 묻는다. 3층엔 세미나실이 없단다. 다시 핸드폰을 검색하여 재작성하고 제출한다. 가방 및 소지품 검사용 X-Ray 투시기를 거쳐 비로소 안으로 입장하였다. 세미나 장소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생수병 한 개와 세미나 자료를 받아 들고 좌석을 찾아 자리에 앉았다. 국민의례와 순국자 및 산업재해에서 희생되신 분에 대하여 묵념하고 좌석에 착석. 개회사와 국회의원 축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세미나가 시작되었다.

모 중소기업 담당 임원이 나라장터 입찰 공고 불편 사항을 지적하고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다음 차례 자신을 직원 50명의 소기업 CEO라 소개하고는 설계 용역단가가 너무 낮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세미나 장소를 나왔다. 내가 들으려 했던 것은 기술 관련 내용과 가장 핫한 업계 동향 등이었는데 아니었다. 업계의 푸념과 그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공론화하기 위한 장소인 것이었다. 나와는 별건의 문제이고 이것을 내가 앉아서 들어야 할 이유가 없어 차라리 국회 이쪽저쪽을 둘러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관을 나와 우산을 펼쳐 들고 본관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경비원이 막는다. 이곳은 미리 인터넷으로 방문 신청하고 승인된 사람만이 입장할 수 있단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와 가운데 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나왔다. 내리는 빗줄기로 인해 바짓단과 신발이 물에 젖어 꿉꿉해진다. 김대중 대통령 기념식수가 보인다. 국회 마스코트인 사랑이, 희망이가 있는 장소에 이르자 평화와 번영의 상이라 이름 지어진 동상이 비를 맞고 서 있다. 양옆으로 너른 잔디 광장이 보인다. 깨끗하게 가꾸어진 정원엔 소나무와 무궁화를 심어 놓았다. 일부러 나무를 두 종류만 심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중앙 잔디 광장에는 다른 종류 나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안내판 앞에 서서 건물 배치도를 살펴본 순간 박물관 있다는 표식이 눈에 띈다. 꽤 멀다. 지금 장소에서 오른쪽 끝에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난 박물관이나 전시관 둘러보는 것을 좋아해 얼씨구나 하고 쾌재를 불렀다.

가다 보니 대형 시계탑이 눈에 띈다. 아래엔 작은 연못을 조성해 놓았는데 수련이 연못 위를 덮고 있었다. 연잎 위로 쏟아지는 빗방울의 산란을 보게 되었다. 세차게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없이 부딪히고 튕겨내고, 흔들리면서 제자리를 지키며 비 오는 날 풍경 전체를 함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아름답다. 물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끊임없이 동심원을 만들어 내고 잎에 부딪혀 만들어 내는 연무는 자연이 부리는 조화였다. 물끄러미 벤치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다가 엉덩이를 들고일어나 박물관으로 향했다. 비에 젖은 바지와 물먹은 운동화가 이내 신경 쓰인다. 박물관에 들어가서 안내 팸플릿을 들여다보았다.

전시실은 총 네 군데 4, 6 전시실은 1층에 1, 2, 3 전시실은 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전시물은 헌법 또는 국회 의정활동과 관련된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특이점은 이승만 대통령의 한복 두루마기와 김구 선생의 의복이 전시된 점이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근 현대사의 내용들이 증거 자료로 전시되어 있어 그간의 역사적 내용을 반추할 수 있었다. 1, 2층 전시실을 둘러보다 목이 말랐다. 지하에 카페가 있어 커피 한잔하려 들렀는데 시간이 지났단다. 아 커피 고픔!

나오다 보니 한쪽 벽이 역대 국회의장의 사진으로 도배를 하고 있다. 찬찬히 면면을 살펴본다. 저분들도 영욕을 함께 하였으리라 생각이 든다. 우리의 근, 현대사가 빠른 경제 성장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질곡의 역사를 밟아왔던가. 무수한 희생과 아픔을 뒤로하고 쌓아 올린 성장이 아니었던가. 일제의 압제로부터 해방과 6.25 전쟁의 참화를 딛고 배고픔을 없애기 위해,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달려온 세월을. 나도 함께해 왔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념을 뒤로하고 국회 경내를 나오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왼쪽 어깨에 가방을 걸고, 왼손으로 우산을 받쳐 드니 오른 어깨 위로 비가 쏟아진다. 어깨와 바지와 신발 모두가 비를 맞아 엉망이 되었다. 귀가를 위해 올 때와 거꾸로 노량진에 가서 전철에 탑승하였다. 급행을 타게 되어 시간이 단축되었다.

몇 년 전 아직 가보지 않은 장소 중 꼭 가봐야 할 곳을 적어본 적이 있었다. 청와대, 동작동 국립묘지, 국회, 청계천과 한강 고수부지 등이 그곳인데 한강 고수부지만 빼고 가보았다. 시간이 날 때 고수부지에 가서 한강 라면을 한번 먹어봐야겠다. 맛있겠지? 202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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