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도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었다. 이유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나는 나를 잘 알았던 것 같다. 사람을 연결시키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걸 잘 한다는 것을. 2023년에 아주 갑작스레 시도했지만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2025년에 문을 닫으며 "사람을 좀 그만 만나고 싶어"라고 말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가게의 주인이라는 역할은 항상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과 스스로 을의 역할을 자처할 때가 많았다. 그런 티를 내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가게는 몰라도 나는 솔직한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에 징징대기도 했다. 이 카페는 뭘까 어느 날은 심리상담소 같기도 어느 날은 작업실 같기도 했다. 갑자기 이 얘기를 왜 하는 걸까? 원래 쓰려던 의도와는 조금 다르게 시작했지만 연결된 점이 있을 것이다.
내가 그동안 살아온 삶들을 항상 애매하다고 생각했었다. 조금 다행인 건 최근 '왜 나는 애매한가'에서 '왜 나는 나를 애매하다 생각하는가'로 변했다. 습관적으로도 애매하다고 말할 때가 많다. 애매한데..? 애매가 뭘까? 희미하여 분명하지 못하다고 한다. 다시 물어본다 나는 애매한가? 아니다. 약간 의심스럽긴 하지만 아주 약간이기 때문에 애매하지 않고 확실하게 아니라고 적고 싶다. 애매하다의 기준은 나 자신이 아니다. 어떤 조직이거나 다른 사람 그리고 이 사회가 규정한 정상 루트라든지,, 아마도 그 정상성을 누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며 나에게 소리쳤다. 왜 네가 너를 애매하다고 생각해! 너 아니어도 너한테 애매하다고 할 사람 많아! 하지만 넌 너한테 그러지 마 너라도 그러지 마,,라고 조용히 소리쳤다.
공간을 또 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오픈된 공간은 아니고 적당히 숨어있는 공간을 내고 싶다. 생활을 하려면 일을 다시 하긴 해야겠다고도 생각한다. 아직 내가 하는 작업으로는 내가 원하는 수입이 될 수는 없으니 다른 곳에서 반을 벌고 작업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한다. 이 고민을 20살 때도 했는데 이제서야 그렇게 하기로 정했다. 멋있다. 해냈다. 잘 한 일이다.
최근 바느질로 입춘첩을 만들면서 글씨를 그려 그 안을 채웠다. 애매함과는 반대다. 확실한 글자와 확실히 찌르고 나가는행위다. 그리고 나는 그 안을 확실하게 채웠다. 한 땀 한 땀을 채우며 이 순간이 정말 애매하지 않다. 확실하다 명확하다는 느낌을 받고 기분이 좋았다.
'애매하다'가 희미한 것이라면 희미한 것을 보고 애매하다고 할까? 희미한 것은 그저 희미한 것일 뿐이다. 그 자체로 명확하다. 그렇다. 나는 나를 명명하지 못해서 애매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들과 만났던 사람들 걸었던 길들 봤던 그림 들었던 음악과 나눴던 이야기들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들을 애매하다 할 수 없다. 다만 이 과정을 뭐라고 부를 것인지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서야 나는 알았다. 명명하지 못해서 그랬던 거야. 이 사회엔 그런 이름이 없지만 나는 맞추고 싶었겠지 이 사회가 부르는 이름으로. 어딘가에 끼고 싶었겠지 어떤 부류로 정의되고 싶었겠지 대체 그런 게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처음 해보는 것이 대부분인 삶에서 서투른 나는 타박의 대상이었다. 우리의 시작이 서툴렀음을 잊어버린 탓이다. 자신이 없다."
내가 쓴 문장 중에 좋아하는 문장이다. 가장 좋아한다고는 말 못 하지만 2019년에 메모장에 적었는데 얼마 전 메모장을 정리하다가 마주쳤다.
아 맞다 나 이 문장 적고 좋아했었는데
내가 나의 뒷배가 되어준다.
서툴고 느리다.
나의 시간대로 내가 흘러갈 뿐이다.
잘 먹고 잘 쉬고 위로해 주는 것도 정말 중요하지만
나는 행함으로써 또 나아가는 사람이기에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
깨치고 나가야 할 때도 있겠지만 사실 없을 수도 있다.
그냥 문을 밀고 나가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는 것은 허상에 가깝다. 누군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나에게 맞다고 말해야 한다.
내가 나를 부르면 된다.
가장 먼저
어느 누구보다
내가 나를 부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