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정보의 시대 끝에 남는 것: 사람
정보 전달력은 계속 진화해 왔다.
구전에서 책,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그리고 소셜미디어까지—
정보는 더 빠르고, 더 많이, 더 쉽게 퍼지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은 거의 전 세계 사람들이 같은 뉴스를 동시에 볼 수 있게 되었고,
지역 신문은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그 예로 미국에서는 2004년부터 2017년 사이에만 1,800개 이상의 인쇄 매체가 사라졌다고 한다. (다른 나라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정보가 많아질수록
‘이건 나에게 필요한 정보인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해졌다.
한때는 힘 있는 누군가가 정보를 정의하고 일방적으로 전달했다.
물론 지금도 그 힘을 가진 권력자들은 여전히 많지만,
이제는 각자의 배경과 맥락에 따라 정보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는 시대다.
사람들은 점점 똑똑해지고
(사실은 똑똑해졌다고 느끼지만, 알고리즘과 세상이 비춰주는 대로 믿고 의지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거대한 담론이나 멀리 있는 ‘정답’보다,
자신과 비슷한 감각을 가진 ‘내 주변’, ‘내 커뮤니티’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때때로 느껴진다.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음에도
왠지 모를 공허함과 불행함을 느낀다.
정보는 넘쳐나는데, 정작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예전엔 지방에서 도시로 올라오는 것이 일상의 탈출이었다.
새로운 문명을 만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고층 빌딩과 잘 닦인 도로, 그 위를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
그 생경한 풍경 속에서 새로운 꿈을 꾸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도시는 오히려 더 반복적이고 평준화된 공간이 되어버렸다.
새로움을 찾아 떠났지만, 그곳엔 이미 모두가 비슷한 삶의 패턴을 살고 있었다.
⸻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나와 비슷한 ‘내 주변’과 ‘내 커뮤니티’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건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정보의 해석권’을 스스로 갖고 싶어 하는 욕구다.
이런 흐름 속에서 유튜버, 인플루언서들은 각자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들은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자기만의 시선과 해석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팔로워는 그 시선에 공감하며 함께 바라보는 존재가 된다.
과거의 세상은 ‘모더니즘(Modernism)’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정답’과 ‘이상적인 삶의 형태’를 규범처럼 제시했다.
남자는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투피스 수트를 입어야 하고,
여자는 단정한 원피스와 모자를 써야 ‘올바른 사람’처럼 보이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처럼
‘모던’을 어디서 봐도 같은 형태의 ‘구(球)’로 본다면, 지금은 그 구를 자르고 ‘틈’을 들여다보는 시대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같은 미적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어떤 이의 추(醜)조차도 누군가에겐 새로운 미(美)가 된다.
최근엔 ‘메타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해석과 진정성을 다시 붙잡으려는 흐름도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포스트모던의 시선 위에 서 있다.
그래서 이제는 누가 정답을 말하느냐보다
누가 해석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 정보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
바로 해석자,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 세계를 다시 조명하는 사람—
그들이 진짜 영향력을 가진다.
지금 중요한 건,
무엇을 아느냐보다 어떻게 보느냐다.
정보보다 해석, 뉴스보다 관점,
지식보다 그것을 통해 나를 어떻게 드러내는가가 더 중요한 시대다.
⸻
최근 내 주변, 내 커뮤니티를 표현하는 단어 중에 ‘로컬’은 단순히 지리적인 개념이 아니다.
비슷한 감각, 비슷한 문제의식, 비슷한 코드로 연결된 사람들의 연결망이다.
서울에 있어도 제주 감성으로 살고,
도시에 있어도 시골적 삶을 추구할 수 있다.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정서적 거리가 사람들을 엮는다.
그래서 세대를 초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흐름 속에서,
다시금 ‘새로운 형태의 지역 신문’이 생겨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시대에 맞는, 내 주변의 이야기를 다루는 느슨한 커뮤니티,
혹은 내 시선과 감각을 공유하는 작은 미디어 말이다.
정보는 넘치지만, 결국 기억되는 건 정보가 아니라 ‘장면’이다.
그 장면을 만드는 힘은 결국 인간의 해석에서 온다.
결국 이 시대를 이끄는 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이가 아니라
가장 잘 ‘해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