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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May 26. 2024

수직 홍채 1

vertical pupil 1

반갑습니다. 오래간만에 인사드립니다

시간을 파는 편의점 이후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이번 소설도 긴 호흡이 필요한 소설이라 한동안 이들의 삶 속에서 살아갈 듯합니다

요즘 징글징글하게 바빠 예전처럼 자주 올리진 못하겠지만 또 이렇게 저질러 놔야 그나마 달릴 수 있는 빌미가 되지 않을까 싶어 저질러 봅니다. 

구독자님들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수직 홍채 시즌 1 1화 -


벌써 일주일째 비가 내리고 있다.

장마철엔 흔한 일 이겠지만 5월이었고 일주일째 내리는 비는 이례적이었다.

마당에 있던 배수구가 나뭇잎에 막혀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그가 빗속에서 때아닌 마당 청소를 했고 그 탓에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물론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좌우로 불어오는 비바람엔 그조차도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평소라면 마당에 있을 건조대가 오랜 비로 거실에 있었기에 거실 바닥에 물을 묻히지 않고 욕실까지 갈 수 있어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욕실에서 나와 커피 보드에 물을 올리고 있을 때 창문 너머로 빗속을 뚫고 소형차 한 대가 집 앞에 멈추더니 조수석에서 누군가 내리는 모습이 보였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빗속을 뚫고 그것도 여인이 그를 찾아올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여인이라고 확신한 것은 그녀가 조수석에서 내리면서 내지른 비명 때문이었다.

짧은 '아~'하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였는데 남성의 굵고 거친 소리라기보다 여성의 날카롭고 맑은 청음에 가까운 소리였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소리에 시선이 끌려 아래를 내려다보니 우산도 없이 사내의 집 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손님이 아닐 테지만 그는 서둘러 의관을 감추고 1층으로 향했다.

"계세요? 김창수 선생님!" 이 집을 설계할 때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대문을 만들지 않은 탓에 그가 내려가기 전 이미 그녀는 현관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는 안쪽에서 바깥쪽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작은 유리로 비에 흠뻑 젖은 여인의 모습이 보였지만 특수 코팅을 한 탓에 그녀는 안쪽의 사내를 볼 수 없었다.

"누구세요?" , "김창수 선생님인가요?" 그녀가 물었다.

"아닙니다. 그 사람은 이미 넉 달 전 이미 이곳을 떠났는데 무슨 일인가요?"

"아~ 그러셨구나" 그녀가 눈을 내리깔며 우울한 모습으로 말했다.

"비가 너무 많이 오네요. 일단 들어오세요." 사내가 비켜서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비에 쓸려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넘기며 꾸벅 인사를 했다.

"여기 수건…." , "감사합니다."

"들어오세요. 커피 마시려던 차였는데 혹시 한 잔 드릴까요?" 사내가 물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어디로 간 건지 알 수 있을까요?" 그녀가 물기를 닦아내며 물었다.

블랙진에 흰색 셔츠를 입은 그녀의 어깨가 물기를 닦았음에도 고스란히 드러났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그가 황급히 시선을 돌렸지만 이미 그녀와 시선을 교환한 후였다.

"죄송합니다. 워낙 낮도깨비 같은 사람이라…. 처음엔 물어보았지만, 묻는 쪽도 말하는 쪽도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을 선호하는지라…. 아! 맞다! 커피!" 그가 서둘러 자리를 피하며 말했다.

잠시 후 돌아온 사내의 양손에 커피잔이 들려 있었다.

"이 비가 언제쯤 그칠까요?" 창밖을 바라보던 여인이 시선을 돌려 커피잔을 들고 오는 사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글쎄요. 일기예보에는 내일 오후나 돼야 그친다고 하던데…. 모르지요. 자연이 하는 일이니…. 그런데 창수는 왜? 찾는 겁니까?"

"스승의 날 찾아뵙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그녀가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 그리고 보니 오늘이 스승의 날 이 군요. 그런데 조금 전날 보고 창수냐고 묻는 걸 보니 아직 만난 적은 없는가 봅니다."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예! 아직 없어요. 선생님하고 통화는 몇 번 해봤는데…. 만남은 아직…. 오늘 만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아쉽네요."

"그런데 왜? 선생님이라고 하는 겁니까?"

"아~ 선생님의 십이지신을 읽고 작가의 꿈을 키웠거든요.

난생처음 팬레터를 보냈는데 답장까지 해 주시고 조언도 해 주셔서 멘토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선생님께서 저를 멘티로 받아들인 건 아니시고…. 일방적인 제 생각이에요. 히히"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웃을 때 사내의 인상이 급속도로 일그러지며, 낯빛이 붉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의 집에서 소사로 일 하던 창수가 자신의 소설 십이지신이 마치 자신의 작품인 양 떠들고 다녔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필명을 썼던 자기 잘못도 이유였을 테지만 그는 필명이든 실명이든 하는 것보다 자신의 작품이 도용당했다는 생각에 주체하기 힘든 화가 밀려들었다.

어느 날 자신의 오랜 팬 이라며 다가온 창수는 굳이 부르지 않았음에도 집안의 허드렛일을 무일푼으로 해 주고 홀연히 사라지는 조금은 특이한 사람이었다.

처음엔 그의 호의가 불편했지만, 워낙 넉살도 좋고 붙임성도 좋은 성격인 데다 똑 부러지는 일 처리가 마음에 들었던 사내는 그를 정식으로 채용하려 했지만, 그는 받아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이 필요로 할 때면 따로 연락하지 않아도 귀신같이 나타나 해결하고는 또 사라지는 우렁각시나 진배없는 고마운 존재였다.

그러나 그렇게 믿었던 그가 신분을 도용해 자신인 양 행동하고 다녔다는 것이 밝혀지자 급기야 말까지 더듬게 되었다.

"뭐!!! 뭐라고요? 뭐라고 말씀하셨지요? 십…. 십이지신이요. 팬레터라고요?" 이미 붉어진 얼굴이 이제는 목까지 붉게 달아오른 사내가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왜? 그러세요? 어디 불편하세요?" 여인이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휴~~~ 잠시만요!" 감정이 격해지자 긴 호흡으로 안정을 찾으려는 듯 사내가 연신 '휴~~~' 하고 긴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장식장 유리에 비친 그녀의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알 수 없는 미소에 기분이 상해버린 사내가 여인에게 "그런데 그쪽은 누구시죠?" 하고 물었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이미경이라고 합니다." 여인이 미소를 감춘 채 말했다. 너무나 태연한 모습에 조금 전 자신이 보았던 미소가 어쩌면 허상이거나 일그러진 거울에 비춰 왜곡된 모습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제가 이상한가요?" 사내의 갸웃거림을 본 여인이 또다시 물었다.

"아니에요. 커피 드세요. 추울 텐데 따뜻할 때 드세요." 사내가 감정을 숨긴 채 멋쩍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여인이 웃으며 인사했지만 사내는 쑥스러운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자신을 사칭한 창수가 생각나 찜찜한 마음은 여전했다.

"선생님은 김창수 선생님과는 어떤 사이신가요?" 여인이 물었다.

아름다운 여인의 물음에 쑥스러워 고개도 들지 못하고 애꿎은 식탁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그냥 아는 사입니다."라며 둘러대던 그가 주춤거리며 "하~"하는 두려움에 떠는듯한 소리를 냈다.

"봤지요!" 여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얼음장 같은 목소리에 고개를 든 그는 조금 전 자신이 봤던 여인의 눈동자를 이번엔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다 당신 누 누구야?" 사내가 뒷걸음질 치며 물었다.

여인의 까만 눈동자가 고양이 눈처럼 세로로 길게 변하더니 검은 눈동자가 빠르게 사라졌다 나타나며 "내가 누군가가 중요한가?"라는 짧은 말과 함께 옅은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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