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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소장 Oct 21. 2023

12. 힘내요, 다들

 “얘들아, KF94 마스크 확인했지? 얼른 와. 체온계 재어보자!”

 일상이 바뀌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이들을 깨워 체온계로 온도를 체크한다. 그리고 난 뒤 교육부 건강상태 자가진단 앱에 접속을 한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서 자가진단을 놓치기 일쑤였다. 거실에다가 임시방편으로 적어두었다.

    < 코로나 자가진단 앱 등교 전 필수! > 임시방편으로 붙인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않게 장기화가 되어 가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이 지속될까? 여분의 마스크를 챙겨서 아이들 가방에다가 넣어두었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제한적인 등교를 추진하고 있다.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의 등교시간이 달라졌다. 학급에 코로나 환자가 발생할 경우 탄력적으로 원격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서둘러서 노트북을 구입했다. 정환이는 혼자서 원격수업을 할 수 있는데 아직 어린 수정이는 서툴고 힘들다. 막내가 원격수업을 하는 날이면 어쩔 수 없이 부동산 사무실 문을 닫는다.

 오늘은 정환이가 집에서 원격수업을 하는 날이라 점심을 챙겨두고 수정이와 등교를 나섰다. 아이들 등교하는 모습이 호러 영화를 방불케 한다. 길거리에 모든 사람들이 새하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아이들 얼굴 절반 이상을 마스크로 가려져 눈만 보인다.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한때 활기차게 아이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던 교장선생님의 모습도 보이질 않는다. 같은 공간이 변하게 되는 건 한순간의 일이었다.


 무지개 부동산 사무실 문을 열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에 의해 일상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문을 활짝 열고 환기부터 시작한다. 코로나 스프레이 소독약으로 구석구석 뿌리고 항균 소독티슈를 이용해서 책상과 의자 등을 닦는다. 출근하면 끓이던 구수한 둥굴레 차도 더 이상 내놓지 않는다. 티포트를 집에 가져갔다. 이런 낯선 삶이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이 더 두렵다.

 코로나로 인하여 부동산 관련 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일단 상담 전화부터 뚝 끊겼다. 코로나로 인하여 부동산이 스톱이 되니 법무사 쪽도 일이 없고, 이사업체 청소업체 인테리어 업체 등 줄줄이 울상이다. 모처럼 집을 구하러 온 손님이 있어 매물을 찾아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1105호 세입자 분이시죠? 저는 무지개 부동산 김소장입니다. 집을 보실 분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시간이 언제 편하실까요?”

 “김소장님, 저희 집에 어린애들 둘 있는 거 알고 계시죠? 지금 코로나 수가 늘어나고 있는 시기에 집을 보러 오신다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은 집을 보여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소장님.”

 “네. 충분히 이해 갑니다. 제가 임대인 분께 이야기 드려놓겠습니다. 코로나 조심하시고요. 나중에 다시 한번 찾아뵐게요.”

 그러고 나서는 희진은 1105호 임대인에게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1105호 사모님. 무지개 부동산 김소장입니다. 1105호 전세 기한이 곧 만료가 된다고 하셔서 부탁하신 대로 임차인분께 얘기드리고 광고도 올렸습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하여 낯선 타인과 집을 보러 간다는 게 염려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세입자 역시도 불안해하시고요. 정해진 임대차 기한은 있지만,  지금 이 시기는 임차인분과 이야기 하셔서 기한을  구두로라도 임시 연장을 하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희진은 임대차 기한이 도래되는 임대인과 임차인들에게 코로나로 인하여 집을 구하기도 보기도 힘드니 당분간 서로 연장을 하라고 안내를 드렸다.      

 

 코로나 감염자 수가 늘어나면서 사망자 수 역시도 증가하고 있다. 금방 끝날 것 같은 코로나가 쉽게 잡히질 않는다. 대기업들은 일찌감치 재택근무 체제로 돌입했다. 자영업자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잠잠해질 때까지 부동산 사무실 문을 닫기로 했다.

 코로나가 예상치 못하게 쉽게 잡히질 않고 있다. 견디지 못한 자영업자들이 하나둘씩 폐업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자발적으로 임차인에게 임대료를 인해해 주는 착한 임대인에게 혜택을 주었지만 그걸로는 역부족이다. 희진 역시도 임대인이 전화가 오셔서는 3개월 정도 반값 임대료를 혜택을 주셨다.

 “김소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무지개 부동산 사무실을 몇 번이나 들렀었어요. 가게 문이 닫혀서 그냥 돌아가곤 했죠. 부동산도 많이 힘들죠? 이런 시기에 손님하고 집 보러  간다고 하면 집주인이든 세입자든 정말 싫어하겠어요.”

 “하하하. 집 보러 간다고 전화하면 욕 들어먹어요.  PC방 사장님. 부동산도 차라리 가게 문을 닫는 게 더 맘이 편하더라고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방법이 없잖아요. 박사장님은 그동안 더 힘드셨죠? 안 그래도 뉴스에서 기사 봤어요. PC방이 집합금지 업종이 되어서요. 박사장님께 차마 전화는 하지 못하고 걱정이 되더라고요.”

 희진의 말에 박사장님은 옅게 웃으시며 고개를 끄떡인다. 박사장님은 한숨을 쉬듯 이야기를 하셨다.

 “김소장님, 지금 PC방 가게 내놓으면 인수할 분은 있을까요? PC방이 집합금지업종이 되면서 경영안정비와 코로나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지원받았지만 그걸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껏 가게를 운영하며 힘든 시기를 몇 번이나 넘기며 하고 있는데 코로나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빚이 쌓이고 있어요. 출구가 보이질 않네요. 하루라도 폐업을 하는 길이 손해를 덜 보는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PC방 운영하실 분이 나타나시면 협의하에 물품들을 그냥 넘겨드릴 생각이에요. 원상 복귀하는 비용보다 오히려 그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만, 지금 같은 시기에는 선뜻 시작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박사장님 건강 잘 챙기시고요. 연락드리겠습니다. “

 PC방 박사장님은 그렇게 코로나19 영업제한 조치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버렸다.      


    



 두 아들의 아빠이자 한 집안의 가장인 민우는 출근 준비로 바쁘다. 결혼 전부터 일을 했던 회사가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퇴사요구를 당했다. 방황하던 시기에 이모들의 도움으로 몇 년 전부터 꿈꿔 왔던 헤어디자이너 길을 걷고 있다. 지금은 집 근처 미용실의 스텝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미용실 아카데미에 등록해서 자격증 준비를 시작했다.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는 동안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았다. 하긴 지금껏 술술 풀렸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깐. 주변에 실망시켜주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해보겠다 매일 다짐한다. 오늘은 부동산을 하시는 은영 이모가 옆 가게 무지개 부동산 김희진 소장님과 함께 오기로 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정점을 찍은 후 감소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머리 연습을 하는데 사람을 구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은영 이모는 먼저 손 내밀기 전에 손을 잡아주시는 분이다. 그 마음이 항상 고맙다.


 민우는 은영 이모와 희진 소장님을 기다리는 중이다. 내가 일하는 미용실로 오시기로 했다. 원장님이 실기 준비를 마치고 편하게 미용실에서 연습하라고 편의를 봐주셨다. 저기 멀리서 이모와 김소장님이 보인다. 늦은 시간에도 감사하다.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에 실기 시험 준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양해 부탁드리고요. 머리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야기해 주세요.”

 “편하게 민우 씨라고 불러도 되죠? 은영 소장님한테서 민우 씨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저도 그동안 알고 지낸 사람 같아요. 하하하. 이 시기에 코로나로 머리 연습하기도 힘들었죠? 저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김소장님. 친숙하게 이름 부르셔도 됩니다. 선뜻 이렇게 도와주셔서 한번 더 고맙습니다.”

“민우 씨, 이모님한테서 사정을 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은영 소장님께 도움을 받은 사람 중에 한 명입니다. 은영 소장님께 지금도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요. 민우 씨는 새로운 길을 시작하고 있는 지금 많이 두려울 거예요. 저도 그 마음 잘 압니다. 저 역시도 직장생활을 하다가 부동산 일을 시작했거든요. 처음에는 세상에 혼자 버려진 외톨이 기분이더라고요.”

“정말요? 김소장님은 전혀 그렇게 보이시지 않은데요? 정말 그런 기분이셨습니까?”

“부동산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낯설고 무서웠어요. 원래 처음 시작은 그런 거 같습니다. 혹시나 말실수하면 어쩌나? 계약서 잘못 적어서 분쟁이 생기면 어쩌지? 매번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불안해하고 조바심내고 그랬어요. 기우(紀憂)라는 표현이 맞을 거 같네요. 그때는 하늘이 무너질까 봐 걱정했단 것 같아요. 하하하.”

“민우야, 시간이 늦었으니깐. 우리 머리 얼른 해 줘. 진짜 너 실력 뽐내봐. 희진 소장이 별났으면 내가 머리 하러 가자고 이야기도 안 했을 거야. 내가 짜장 탕수육은 쏜다! 김희진 소장은  뭐 먹을래?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새롭게 시작하는 이 길에 함께 동행하는 이들이 있어 덜 외롭고 덜 힘들다. 늦은 시각 미용실의 불은 따스한 온기로 환하게 켜져 있다.      



 초등학교 동창이자 아내인 경아가 구직사이트를 찾아보고 있다.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뒤 직장을 찾아보고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폐업이 늘어나는 상황이라 쉽지 않다. 예전에 경아에게 꿈을 이야기했던 적은 있었다. 헤어 디자이너가 하고 싶었다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높은 현실의 벽 앞에 부딪히게 된다.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건 욕심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부동산을 하시는 은영 이모가 전화가 왔다.

 “민우야, 이모들하고 커피 한 잔 마신다고 모여있는데. 혹시 시간 괜찮으면 우리 있는 쪽으로 나와볼래? 너네 집 근처야.”

 “잘 지내셨죠? 이모들이 부르시는데 당연히 없는 시간도 만들어서 나가야죠. 얼른 나갈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5인 이상 사적 모임은 금지, 밤 10시 영업 단축’을 했었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었는데 최근에 거리 두기가 완화로 인해 가능해졌다. 은영 이모가 가게 안에서 손짓을 하고 있다. 얼른 이쪽으로 오라고.

 “민우야, 따뜻한 거 뭐 먹을래? 우리는 먼저 시켜서 먹고 있었어. 이모가 살 테니깐 젤 맛있고 비싼 걸로 사줄 테니깐. 다 시켜.”

 “은영 언니 민우가 카페에서 젤 비싼 걸 시켜봐야 얼마 하겠어? 커피 한잔으로 너무 쉽게 점수 따려고 하지? 하하하.”

 “이모님들 다들 잘 지내셨죠? 코로나로 그동안 다들 힘드셨을 텐데 이렇게 건강하게 만날 수 있어서 진짜 다행이에요. 일단 제가 커피 한잔 시켜올게요.”

 민우는 따뜻한 카페모카를 좋아한다. 주변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지만 달달한 커피에 시나몬 가루를 듬뿍 뿌려 마시면 기분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 같다.

 “민우야, 우리 이모들이 며칠 동안 모여서 곰곰이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거든. 민우가 우리 의견을 수락했으면 좋겠구나.”

 “이모님들. 갑자기 불러내서 그런 말 하니깐 긴장되는데요. 마음을 굳게 먹고 들어보겠습니다.”

 “민우야, 내가 그래도 이모들 중에서는 나이가 가장 많으니깐 대표로 이야기할게. 지금  많이 힘들지? 녀석 우리한테도 내색도 안 하고. 엄마한테서 다 들었어. 코로나로 인해서 회사도 어려웠었다고. 민우야, 내가 살아보니 위기가 기회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더라. 이 기회에 헤어디자이너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떻니?”

 “아. 걱정하실까 봐 이야기 못 드려서 죄송해요. 다들 힘든 거 아는데 저까지 보탬이 되고 싶진 않았거든요. 코로나로 취업이 힘든 건 사실이에요. 그 생각도 안 한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경아한테는 헤어디자이너 이야기 꺼내지도 못했어요. 그 꿈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은 여러모로 무리 같아서요.”

 “그래서 우리가 모인 거야. 이모들 하고 회의를 해봤다. 요즘은 이럴 때 펀딩이라는 말을 쓴다더구나. 펀딩이라는 말 들어는 봤지? 지금은 아이 둘 아빠고 한 가정의 가장이니 책임을 져야 할 테지. 우리가 당분간 생활비 하고 교육비를 마련해 줄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니? 우리가 뒷바라지해주는 돈들 수첩에 빠짐없이 적을 거야. 자리 잡고 나서 천천히 갚아줘. 우린 지금 민우한테 적금 넣는다 생각할 테니깐.”     

 

 민우는 이모들과 헤어지고 무작정 걷다 보니 공원이 보였다. 다행히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가로수 불 빛 아래 낡은 그네가 보인다.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직도 얼떨떨하기만 하다. 이모들과 헤어질 말미에  “세상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지만 잘할 자신 있어요.”란 말을 건넸다.

 세상이 쉬운 적은 없었다. 인생은 장밋빛이라고 하는데, 난 왜 잿빛 속에서 우중충하게만 살아야만 했을까? 뭐든 한 번만에 된 적이 없는 것 같다. 대학교도 재수를 해서 들어갔고, 군대조차도 내가 지원할 때 지원자 수가 몰려서 대기를 하다가 들어갔다. 나이가 들어서 울어본 기억이 없다. 울 수 있는 여유조차 없을 만큼 치열하게 살았다. 그전에 다니던 직장도 힘들게 겨우 들어갔더니 코로나로 직장을 잃었다. 나는 그렇게 또 인생의 고베를 마셨다.

 

 집으로 돌아가니 두 아들 녀석은 아빠를 기다린다며 떼를 쓰다가 좀 전에 곯아떨어졌다고 한다. 경아가 무슨 일이 있는 거냐면서 조심스레 물어본다. 경아에게 이모들이 건넨 제안을 들려줬더니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어버린다. 그동안 내가 힘들까 봐 말은 못 해도 마음고생은 심했을 거다. 아무 말 없이 그 시간을 기다려 준 경아에게 고맙다. 남들보다 늦게 이 길을 시작하게 됐지만, 나는 앞만 보고 묵묵히 걸어 나갈 거다.

 인생은 잿빛이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조금은 장밋빛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그런 생각이 든다.

다들 마음먹기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고들 한다. 어쩌면 나는 밝은 빛에 있었으면서도 , 나의 불안에 세상을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김희진 소장님은 활기가 넘치는 분이시다. 며칠 전부터 은영 이모와 김소장님과 함께 미용실 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오전 일찍부터 희진 소장님한테서 연락이 오셨다.

 “민우 씨, 은영 소장님은 나이가 있으신지 몸이 예전 같지 않다며 오늘은 패스하신대요. 그래서 나랑 같이 둘이서 임장가요. 그리고 돈 많이 벌면 이모 한약 좀 지어드려요!”

 “네, 이모에게서 전화를 받았어요. 김소장하고 임장 다니다가 몸살이 난 거 같다고요. 하하. 워낙 김소장이 일을 잘하니 본인이 없더라도 걱정도 안 된다고 하셨고요. 그나저나 김소장님은 며칠 동안 저 때문에 무리하고 계시는데 몸은 괜찮으세요? 오늘은 어디로 갈까요?”

 김소장님이 말한 약속 장소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다. 저 멀리서 걸어오시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매물을 보러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편한 운동화를 신고 오신다. “내가 무지개 부동산을 찾는다고 구석구석 다 뒤졌거든요, 하마터면 다른 지역까지 갈 뻔했다니깐! 하하하” 웃으면서 이야기해 주셨었다. 스쳐 지나가듯 들었는데 김소장님은 진심이었다. 먼 거리를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꼼꼼하게 분석하셨다.

 

 자격증을 따고 나서 미용실 오픈을 어디서 해야 할까?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부동산을 하고 계시는 은영 이모가 계셔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는데, 김희진 소장님까지 합쳐지니 무적이 되었다. 나이를 드신 은영 이모보다 김소장 님이 젊은 편이셔서 조언해 주시는 게 다르긴 했다. 오전 김소장님과 통화하실 때 젊음의 현장으로 간다고 하셨는데 궁금하긴 하다.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김소장님과 얕은 언덕길을 올랐다. 전문대 정문으로 통과하려면 아파트 단지를 마주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길이였다. 약 천 세대 정도 규모의 아파트 단지들이 이중 차도를 가운데 두고 마주하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상가에 아직 미용실이 없고, 맞은편 아파트 단지 상가는 내년에 입주를 한다. “일단, 민우 씨. 입주하고 있는 아파트 상가에 아직 미용실이 없으니깐 먼저 여기서 자리 잡고 있어요"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이제 이곳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나갈 것이다.       

         



 희진은 민우를 보며 용기 있고 참 대견하단 생각이 든다. 두 아이 아빠라는 타이틀 덕분인가? 그런 생각도 들고. 은영 이모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잔소리를 퍼부어도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경청한다. ‘반듯하게 컸다’라는 말이 제법 어울린다. 손재주를 타고나서 부럽다고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본인은 남들보다 죽어라고 연습하는 연습벌레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노력도 재능이라고 답해줬다.

 미용실 자리를 구하면서 희진은 옛 추억에 잠겼다. 7년 전, 무지개 부동산 자리를 서소장님과 남편 동우와 찾아 헤맸던 것이 생각난다. 서소장님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새롭게 시작하는 이를 위해 힘이 되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었다. 민우 씨처럼 회사 경영이 어려워 직장을 잃은 사람도 많았다. PC방 박사장님은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결국엔 폐업을 하셨다. 컴퓨터 기기를 헐값에 팔고 상가를 원상복구 하느라 손해를 크게 봤다. 그럼에도 웃으시면서 마지막 인사하시러 오는 박사장님을 보며 마음 한편이 저려왔다.

 나이가 들면 삶이 유연해지기는커녕 더 빡빡해진다. 인생을 살아나가는 게 도통 익숙해지질 않는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걱정거리가 없으면 인생을 어찌 사냐고. 걱정거리가 어느 정도는 있어야 인생을 헤쳐나갈 재미가 있지 않냐고. 그것 또한 인생이라는 거지! 터널의 끝은 분명 온다. 그걸 알기에 한번 걸어 나아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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