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9월.

주섬주섬

by 손두부

친구가 그 드라마에 나를 닮은 연예인이 나온다고 했었다.

그 말을 듣고 당시 나는 오, 진짜? 하면서도 바로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1년이 흐른 지금, 격리생활에 지친 나는 생전 열어보지도 않던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1년 전 친구가 한 말을 생각해냈다.

‘나를 닮은 연예인! 누군지 한번 볼까?’

드라마의 제목은 ‘동백꽃 필 무렵’.

몇 장면 안 가서 알 수 있었다.

왕방울만 한눈에 동글 납작한 얼굴, 그리고 코보다 댓 발은 나와 있는 주둥아리.

'필구'는 나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시작부터 실패 같아 보이는 인생이 있다


필구의 엄마, 동백이는 어쩌다 보니 고아원에서 자랐고 어쩌다 보니 미혼모가 되었고 어쩌다 보니 술집을 하면서 필구를 키우게 됐다. 필구도 어쩌다 보니 그런 부모가 당첨되었다.

8살이라는 나이에 세상만사를 이미 꿰뚫으시고 걱정만 한가득인 필구는 그렇게 동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소문의 한가운데 있는 캐릭터였다.

필구의 인생은 시작부터 ‘실패’ 같아 보였다.


나는 필구처럼 인생 등판 복불복 게임에서 그리 나쁜 시작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의 부모님은 소위 말하는 아주 평범한 분들이셨다.

하지만 나는 4남매 중에 막내로, 의도한 탄생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셋째가 아들이니 더더욱 딸인 나를 넷째로 낳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남아선호 사상이 짙었던 그 당시 한국사회에서 이 정도의 일은 비일비재하지만

굳이 내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서 말하자면 나도 약간은 실패의 산물이었던 것 같다.


그럼 내 아이의 시작점은 어땠나?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럼 이것이야말로 시작부터 진짜 ‘실패’인 셈이겠다.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 건가? 부모로서 자책이 되고 늘 좌절감을 가지고 산다.

이렇게 어찌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부분부터 실패 같아 보이는 인생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노력해도 안 되는 실패의 연속 같은 현실도 있다


그렇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은 노력만 하면 실패 없이 성공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술집을 하는 필구 엄마, 동백이는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박복하고 실패한 여자라는 꼬리표를 떼낼 수가 없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게 큰 힘이 되니까 수학이라도 잘하면 선생님과 친구 사이에서 위상이라도 설 텐데 필구는 수포자다. 친구들 사이에서 맞고 다니는 쪽은 아닌 걸로 봐서, 다행히도 주눅 들어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필구는 사는 게 고달프다.


불퉁거리는 필구의 표정을 한 나의 어릴 적 모습은 어땠더라?

나는 우리 집 안에서 있는 둥, 없는 둥 하는 존재였다.

무언가를 잘해서 자랑이 되는 자식도 아니었고, 무조건 사랑을 쏟고 싶은 사랑스러운 막내 캐릭터도 아니었다.

가족을 붙잡고 한 사람 한 사람 인터뷰하자면 또 얘기가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억은 그렇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내가 '의도치 않은 존재'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그래서 어릴 적 나는 필구 표정을 해가지고서는 늘 소리를 질러대서 별명이 '악바리'였었다.

나이가 들어서 나는 다른 형제자매들과 다르게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집안에서 최대한 민폐를 덜 끼치는 방법이며 부모로부터 인정을 받는 방법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은 아무것도 바꿔놓지 못했다.

결국 나는 빨리 그리고 조용히 집에서 퇴장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나의 아이는 어떤가?

처음엔 느리지만 다른 아이들을 곧잘 따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은 어눌하지만 보통스럽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작스럽게 증상이 악화되면서 결국 약에 의존하고 병원을 들락거리며 살고 있다.

아이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내가 같이 노력한다 해서 뜻대로 되는 건 별로 없었다.

급기야는 실패로 시작한 인생이 어떻게 실패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비관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는 일이 잦아졌다.

이렇게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조금 있다 해도 뜻대로 움직여지기란 정말 쉽지 않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일상'


'그냥 어쩌다 보니 우리 반에 아빠가 없는 건 나뿐인걸. 근데 옆반에는 두 명이나 있어.'

처음엔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지만 이내 필구는 옆반에 두 명이나 있다는 걸 기억해내고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기가 잘하는 야구를 열심히 했고, 자기 방식대로 엄마를 돌봤다.

나도 따라 해 본다.

'그냥 어쩌다 보니 15년 가까이 엄마 아빠와 내가 주고받은 연락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모든 가족이 다 똑같은 모습은 아니니까.

그리고 그냥 어쩌다 보니 내 아이가 그렇게 태어난걸. 나는 대학 보낼 걱정 대신 좋은 병원 찾을 걱정을 하는 거야. 그냥 조금 다른 삶을 살 뿐이지.'


애초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처해버린 실패 같은 상황.

그걸 극복해보겠다고 노력해도 잘 움직이지 않는 실패 같은 현실.

이렇게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실패'가 아니라 그냥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또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상'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내 생각을 재조립해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내가 그 일상을 어떻게 대면해야 하고,

그다음 어떻게 한 발짝을 내디딜 것인지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원래부터 내 안에 이 상황을 잘 요리할 수 있는 꾸준한 힘이 있어 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것을 잊을 만하면 깨우쳐주는 동백이의 남자, 황용식이가 내게는 없어도.

(그런 남자는 현실계엔 없다. 슬퍼하지 말자.)

나는 스스로 반복학습을 잘하니 괜찮다.

그게 최면이어도 좋고, 착각이어도 좋다.

그러다 보면 나는 진짜 계속해서 빛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내 앞에 닫혀있던 문은 그렇게 살짝 열렸고, 그 문 너머에는 다른 풍경이 있었다.


지금 이 모습이 되기 위해서 그동안 실패해왔고 좌절해왔다.


결국 나는 우리 부모님에게 불퉁거리는 필구의 표정을 한,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최근 들어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며 아빠는 이렇게 말한다.

“자식들 모두 한강에 쭉 짜 놓은 물감 마냥 풀어져 흩어져 버리는가 싶었는데, 네가 글 쓰고 그림을 다시 그린다니 그 마음이 사라졌다.”

최근 아빠는 자식들 중 내가 당신을 가장 닮았다고 말한다.

자신을 닮았다고 말해주는 것, 그건 자식에게 가장 큰 칭찬이고 인정이다.

그 순간 내 존재의 시작 그리고 내가 노력해 온 일들은 이미 실패가 아니게 된다.


살아도 죽은 것처럼 하루를 보내고 있나?

인생이란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지만 사는 것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나?

아픈 아이 그리고 그런 아이와의 삶은 내가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시장통 사람들이 보기엔 필구가 동백이의 실패의 산물처럼 보이겠지만 동백이에게 필구는 잘살아보겠다는 원동력이고 선물이었지 않나?

나는 그 정도 고수는 아니어서 내 아이를 차마 '선물'이라고, 그렇게까지는 말 못 하겠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해 준 중요한 존재라는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 순간 아이의 존재는 그리고 아이와 나의 하루하루는 이미 실패가 아니게 된다.


나는 오늘도 또 '실패'를 한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실패 같아 보였던 시작점도,

실패의 연속 같았던 매일도,

지금의 내가 되려고 차근차근 밟아야만 했던 절차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러니 오늘 나는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도, 그래서 좌절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렇게 되기로 한 모습대로 천천히 잘 가고 있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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