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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리 Jul 14. 2024

맞벌이 한 달 적응기

살려주세요.

유아기의 아이를 키우면서 맞벌이가정의 어려움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는 너무 건방진 태도였다는 것을 출근한 지 사흘 만에 깨달았다.

듣는 것과 실제는 달랐다. 정말 달랐다.



첫째 주

남편 그리고 아이도 적응을 해야 했고

나 역시도 적응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출산 D-10까지 출근했던 나

육아휴직 후 회사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회사의 자금난이 있었다. 운이 좋게도(?) 권고사직 처리가 되었고 아이와 실업급여를 받으며 아이와 등하원을 하고 퇴근한 남편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 시간들은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감히 표현해 본다. 사실 당시엔 이것도 쉽지 않았는데 출근을 하며 육아를 해보니까 '그때가 행복한 거였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아침에 아이는 오전 7시 30분에 남편 출근길에 등원하였다. 아이는 1등으로 등원을 하게 되었고 꼴등으로 하원시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등원은 남편, 하원은 나의 담당이었는데 퇴근 후 6시가 땡 하면 눈치 보이지만 눈치 안 보는 척 6시 2분에 나왔다.(회사에서 눈치 주지 않았다. 그냥 내가 눈치 보였을 뿐)

그리곤 버스정류장으로 뛰었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서는 신호 타이밍이 잘 맞아서 더 빠르게 집에 갈 수 있길 마음 속으로 바랐다. 아이의 웃음을 보려 빠른 걸음을 하며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활동량이 많은 친구인데 어린이집에 거의 11시간을 있었던 것이 너무나 미안해서 놀이터로 향했다. 놀이터에서 30분 ~ 1시간을 있는 힘껏 놀아주고 집으로 향했다.


출근 나흘 만에 반반차를 썼다. 몸살감기와 장염이 왔고 수액을 맞으러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수액이 잘 맞았고 다음날엔 전날보다 나았다.


나의 커리어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아이는 잘 자라고 있는 걸까?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출근을 했을까?


첫째 주는 아주 조금 많이 혼란스러웠다.




둘째 주

일주일이 지났다고 꽤나 적응했다면서 건방을 떨었다.

토요일, 일요일에 걸쳐서 아이의 유아식 준비를 하였고 어른들의 저녁식사까지 밀프랩해서 아주 철저하게 준비하였다. 이 정도의 난이도라면 맞벌이 가능할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떠는 건방을 보였다.

그 건방은 보기 좋게 그 다음 주에 처참하게 부서져버렸다.




셋째 주

월요일 출근 후

남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아이가 수족구 의심이 되어서 하원해서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이다.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된 내가 연차를 쓰긴 어려워 남편이 연차를 쓰기로 했다.

병원에 가니 아이는 수족구라고 한다. 멘탈이 부서진다.

남편이 회사에 사정 말하고 재택근무를 할까?라고 말하는데 남편의 일 특성 그리고 아이의 성향으로 보았을 때 육아도 일도 모두 안 될 것이 눈에 보였다.


귀촌한 친정엄마한테 급히 전화를 했다.

엄마, 도와줘... 미안해. 방법이 없어...

엄마이지만 나도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다. 남편은 급히 아이 짐을 싸서 시골로 갔다.


여기서 끝났어야 했는데...


밥을 먹고 집으로 올꺼라던 남편이 급하게 전화가 왔다.

나 3중 추돌사고 났어.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할게



ha... 고속도로에서 3중 추돌이 났다고 한다. 과실 0으로 나왔지만 이 모든 게 월요일 하루에 일어난 것이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감사하게도 겉으로 보이는 외상은 없었지만 차가 꽤 많이 망가졌고 남편도 허리가 아파 입원했다. 앞 뒤로 끼어버렸던 우리의 붕붕이는 폐차이야기까지 나왔지만 위를 빼곤 모두 갈아버렸다. ㅎ...


남편과 나는 통화하며 아기가 안 타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하는 남편

그걸 맞다며 말하고 있는 나

이 상황이 조금은 슬펐고 남편에게 미안했다.


그래도 감사할 일이었다. 외상이 없었고 아이는 타고 있지 않았고 돈 지출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었고

평범한 일상에 다시 한번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날이었다.


갑자기 집에 혼자가 되어버렸고 마음이 싱숭생숭했지만 수요일쯤 되니 적응되었고 고요함이 행복했다.(미안)



넷째 주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고 수족구는 완치가 되었지만 감기가 심하게 와서 주말 병원 오픈런을 하며 보냈다.

돌아와서는 떨어지기 싫다며 칭얼거리는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안 좋았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아이가 깨어있는 시간을 꽉꽉 채우려 노력했다.

주말엔 평일에 못한 시간을 더 보내야 된다는 생각으로 꽉꽉 채워서 보냈다.


금요일 저녁에 누워서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진짜 진짜 최선을 다했다. 그렇지?


맞아. 퇴근 후 한 번도 안 쉬고 움직였어.



고작 한 달밖에 안 해보고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감성적인 사람은 아닌지라 화장실에서 울거나 이런 적은 없다.


그냥 한 달이 꽤 버거웠다.


내가 집에서 하던 일이 정말 많았구나 느꼈고 둘째를 생각했었는데 사실 이게 가능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도 일도 집안일도 모든 게 엉망인 것 같다.


부정적 생각이 마구마구 올라온다.


근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한 달 해봤으니 다음 달은 조금 더 나아질 거라며 위로해 본다.

몇 달 전의 나로 돌아간다면, 매일 운동할 걸이라며 후회하고 있다.


그래서 주 2 ~ 3회를 목표로 러닝과 사이클을 타는 중이다. 체력아 늘어나라아앗!



(이 와중에 아침에 공부하겠다고 일어나서 20분이라도 매일 공부한 것, 회사가 별로여서 퇴근 후 환승 이직하려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 2개나 본 나, 글로 써보니 한 달 동안 고생한 나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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