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 과정이 꼭 필요했다고, 단지 과정의 일환이었다고 회상한다.
임신을 했다. 각도기로 잰 듯 한 계획임신이다. 감히 계획 임신을 입에 올릴 수 있는 이유는 건강하고 나름 어린 편에 속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획 임신을 하면 뭐 하나 결국,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산책을 즐기던 내가 1km도 걷지 않았음에도 세상이 빙빙 돌아서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토할 것 같기도 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쉬기도 하고
멀미를 하지 않던 내가 지하철에서 멀미를 하는 경험을 해보기도 한다.
곱창과 같은 돼지 부속 음식도 즐겨 먹던 내가 냄새에 속이 울렁거려 다 치웠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샤워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머리를 여유롭게 말리며 짧은 글귀를 보며 하루의 끝자락에 행복을 만끽했던 내가 샤워를 하고 에너지가 없어 거실에 누워본다. 그리곤 힘을 내서 머리를 말리러 들어간다.
임신을 하고 감기에 옴팡 걸려버렸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진찰을 하지 않아도 누가 봐도 축농증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임신초기에 약을 쓰기엔 조금 불안하다며 돌아가라고 말한다. 첫째가 있는 나는 이 상태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수액을 맞을 수 있냐 물어본다. 그렇게 이틀 연속 맞은 수액 수액 스웩
그나마 다행인 건 첫째 때 임신의 경험으로 융통성 있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역시 회사에서도 경력자를 우대하는 이유가 있어라며 혼자 피식하고 웃어본다.
회사를 출근한다. 퇴근하고 싶다. 퇴사하고 싶다. 육아휴직 당장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의 이 시기를 약 한 달 정도 잘 버티면 나름의 황금기가 온다는 것을 말이다.
좋았어. 11월 빨리 지나가라!
*첫 문장 출처 :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정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