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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Jieun Lewina Nov 15. 2020

평범한 매일 특별한 순간

육개장의 맛


아빠는 육개장을 참 좋아하셨다. 엄마는 그래서인지 자주 고사리를 잔뜩 넣고 육개장을 끓이고는 했다. 둘이서 너 죽네 나 죽네 싸우며 접시나 컵이 휙휙 날아가다 와장창 깨지는 광경을 목격 하기도 했지만 음식을 하는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니네 아빠가 이거 좋아하잖아

바로 이 말이 제일 많았다.

엄마가 끓인 육개장은 진하고 고기가 듬뿍 들어 있었다. 어릴 땐 매운 걸 잘 못 먹어서 가끔 달걀을 풀기도 했는데 육개장 국물 속 몽글진 달걀과 고사리를 건져 먹으면 어찌나 맛나던지. 일본에서 살 때 딱히 한국 음식이나 김치를 그리워한 적은 없었지만 혼자 감기같은 걸 앓을 때면 엄마가 커다란 들통에 푹푹 끓인 육개장이 그렇게 간절할 수가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내주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 였을까. 침울해지기 쉬운 장례식장이란 공간에서 육개장은 조문객의 입맛을 돋궈주고 속을 달래주는 뜨끈한 한그릇임에 틀림이 없다. 아빠를 보내드리는 날 일회용 용기에 국자로 뜬 육개장도 맛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슬픔과 피로로 도저히 먹지 못할 것 같았는데 숟가락을 뜨니 웬걸 한그릇을 다 비우는 바람에 그게 그렇게 송구할 수가 없더라.  

사무실이 위치해 있는 시청 주변엔 오래된 맛집이 많은데도 일이 밀려있거나 혼밥을 하게 되면 대충 한 끼 때우고 마는데 얼마 전 여운규 쌤의 부민옥 육개장 포스팅을 읽고 언제 가나 벼르다 25년 지기와 점심에 부민옥에 가자고 의기투합 했다. 회사가 가까운 친구가 있다는 건 역시 은혜로운 일.

부민옥의 육개장은 내 엄마가 끓여주는 전라도식(?) 육개장과는 꽤 다르지만 파와 고기가 후덕하게 들어가 있는 이 곳의 육개장은 그야말로 어른의 맛이다. 맵지 않은 국물에 파의 산뜻한 산미가 어우러져 고기와 파를 밥에 얹어 먹어도 좋고 밥을 말아 후룩후룩 먹어도 좋다. 아빠 생전에 한 번 모시고 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눈에서 금새 땀이 나 냅킨으로 이마를 닦는 척 하며 얼른 눈가도 훔쳤다.

언제 가도 같은 맛을 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미덕이다. 부민옥이 그렇다. 이 곳은 육개장도 맛있지만 양곰탕도 일품이고 퇴근 후엔 양무침과 소주를 곁들여도 그만인 곳이니 언제 저랑 이 곳에서 밥 한 번 먹죠. 그리고 소주도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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