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을 듣고 싶어서였을까
정말 마음에 와닿는 글을 볼 때면 글쓴이와 만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종종 생긴다. 문장력에 감탄해서, 소재가 참신해서, 관심 가는 주제여서 그런 마음이 들 수 있겠지만, 진짜 이유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서다. 한 사람의 인생이 꾸밈없이 녹아 있는 글에는 힘이 있다. 읽는 사람에게 충분히 가닿을 만큼 말이다.
다만 이런 기분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상상하다가도 과정의 번거로움을 찬찬히 톺아보면 몹시 귀찮아져 그냥 생각을 허공에 흩어버리고 만다. 언어와 국적을 달리해 물리적인 한계가 있을 수도, 심지어 시대가 달라 유명을 달리한 이도 있기에, 종이비행기 만들 듯 마음을 꼬깃꼬깃 접어 어딘가로 날려버린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가들이 있다. 현실적으로 접근이 가능한 경우다. 물론 상식이 허락하는 선에서. 아이돌 사생팬 같은 짓은 해서도 안 되고 할 필요도 없다. 나는 글을 통해 교양을 쌓는 사람이 아닌가. 더군다나 상대는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글을 써서 전달하면 된다. 의외로 많은 작가가 외부에 메일을 공개한다. 아마 출판이나 강연 제의를 받으려 열어놓은 거라 짐작한다.
물론 메일을 찾고 보내는 과정이 수월하진 않다. 정확히 말하면 어렵진 않고 번거로울 뿐이다. 일례로 <90년생이 온다>를 쓴 임홍택 작가는 작가 소개에 이메일을 남겨두었다. 작가 소개를 지나치지 않고 꼼꼼히 읽어야 할 이유다. 네이버 블로그를 이용하는 작가라면 네이버 메일로 보내면 된다. 간단하다. 가끔은 구글링을 해볼 필요도 있다. 작가가 예전에 남긴 메일 주소가 웹로그에 남아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0과 1의 세계 속에서 산다. 온라인의 흔적을 이용해 메일을 보내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스팸메일이 아닌 이상.
어쨌거나 이렇게 바쁜 이들을 팬심만으로 불러낼 수는 없다. 삿된 이유만으로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줄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방탄소년단이 1대1 미팅을 해줄 리는 없다. 팬미팅이라는 ‘공식’ 행사를 열면 열었지. 그래서 나는 인터뷰 기사를 쓰겠다는 목표를 설정한다. 명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삿된 욕망을 ‘공적’ 이유로 확장하면 명분이 생긴다. 프리랜서 기고자 신분으로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여러 매체에 투고해 기사화하겠다는 명분.
마음만이 답은 아니다. 나와 작가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쓸 내용을 차분히 갈무리하고 이를 편지에 옮긴다. 그리고 이메일을 보낸다. 답을 기다린다. 연애편지처럼 진실해야 한다. 거짓으로 점철된 글이 읽힐 리 없다. 진심을 담되 앞서 말한 합당한 공공의 사유가 있어야 한다. 의외로 많은 분이 기성 매체가 아닌 개인에게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는 듯하다. 유튜버 겨울서점이 유현준 건축가와 만나 인터뷰한 영상은 12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웬만한 언론사보다 도달률이 높다.
물론 유튜브가 기존 매체의 영향력을 뛰어넘은 지 한참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특기할 만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요는 회사에 소속된 사람이 아닌 개인도 인터뷰를 성사해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영향력과 그에 따른 확률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말과 글로 인터뷰이를 조명할 수 있다면 플랫폼은 중요한 게 아니다. 내 경우에 의외로 확률은 높았다. 거절당한 경우도 물론 많지만. 10명 중 3명이 응한 거면 꽤 높은 편이라 생각한다.
작년이다. 감사하게도 내 갈급한 요청에 흔쾌히 응낙해준 분들이 있다. 요리사와 음식 평론가 그리고 작가로 활발히 활동 중인 박찬일 셰프,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로 플랫폼노동의 현실을 지적한 박정훈 라이더 유니온 위원장, <90년생이 온다>로 세대론 논의에 불씨를 지핀 임홍택 작가다. 그리고 한 분이 더 계시지만 이분에 대해선 글 말미에 따로 언급하겠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니까.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