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사람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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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과 만나 대화를 나눌 때의 심정은 한마디로 정리된다. 멘붕. 시종일관 긴장의 연속이었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답시고 했지만 어설펐다. 애써 능숙한 척하는데 가끔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몰랐다. 주술 관계가 안 맞을 정도로 심하게 더듬댔다. 말을 진짜 못했다. 드라이버가 나사를 서서히 옥죄듯 심장이 조여지고 있는 듯했다. 답답한 심정이었다. 준비한 말은 해야겠는데 시간은 한정돼 있고. 능력보다 욕심이 과했다. 아마 그분들도 내가 떨고 있다는 사실을 읽었으리라. 지금 와서 복기해보면 준비한 것에 얽매이지 않고 더 귀담아듣는 태도로 임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무사히 끝마치고 기사를 써 언론사에 투고했다. 포털 메인에 내 글이 노출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름 세상에 일조한 기분이 들었다.
박찬일 작가는 카리스마 있었다. 개떡 같은 질문에도 찰떡같은 대답을 해주셨다. 그분의 말이 곧 내가 쓰는 문장이 됐다. 한마디 한마디가 심금을 울렸다. 박정훈 작가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맥도날드 지점으로 날 초대해 식사 한 끼를 같이했다. 인터뷰라 할 수는 없어 그날의 대화를 기록으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플랫폼노동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배달기사 관련 글을 써서 매체에 기고했다. 임홍택 작가는 홍은동 모처 조용한 카페에서 만났는데 정말 좋은 어른 같았다. 평소에 청년의 입장을 많이 헤아리시는구나 생각했다. 괜히 90년대생을 주제로 책을 쓰신 게 아닌 듯했다. 온후한 인상에 수더분하셨다. 행동 하나하나에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져 푸근했다. 좋은 사람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날 하루가 다 뿌듯했다.
글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이때 느꼈다. 진짜 뭣도 아닌 취업준비생 신분이었는데 나를 만나주다니. 쓰기가 생활화된 분들이라 그런지 편지의 온도와 색깔을 좋게 봐주신 듯하다. 작가님들과 만났던 경험은 내 성장에 무척 도움이 됐다. 심지어 취업에도. 백수여서 여유 있을 때 내가 하고 싶은 뭔가를 해보자는 심정이었는데, 이 경험을 이야기할 때면 면접관들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실행력과 적극성에 좋은 점수를 줬나 보다. 언젠가 이 경험이 내게 이득이 될 거라는 일말의 계산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버킷리스트를 이루겠다는 순수한 마음이 더 컸다. 이분들과 나눈 메일 기록은 아직도 내게 소중한 보물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내 만남의 요청에 흔쾌히 응한 작가님이 한 분 더 있다. A 작가로 표현하겠다. 본업이 따로 있지만 글쓰기를 본업이라고 봐야 할 만큼 필력이 대단한 분이다. 그분의 신상을 특정할 수 없도록 이렇게만 밝혀둔다. 참고로 앞선 세분도 여러 일의 경계를 오가며 활동하는 분들이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본업과 부업의 경계를 나눌 필요도 없다. 글쓰기는 자신의 세계를 마주하는 작업이지 않은가. 다른 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가장 기대되는 만남이었다. 나는 이 당시 이분의 글에 함몰될 정도로 정말이지 미친 듯이 빠져 있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민방위 훈련을 받을 때에도 핸드폰을 보지 않고 이분의 책을 읽을 정도였으니. 무엇보다 글감이 내 맘에 쏙들었다. 지난 몇 년간 머릿속에서 숨 쉬듯 망상하는 주제였기에 더 와닿았다. 연극 무대에서 열연하는 배우들의 격정적인 연기를 보는 듯 묘사가 가슴에 사무쳤다.
2019년 7월 3일의 일이다. 약속의 날이었다. 녹사평역 근처에서 A 작가님과 만나기로 했다. 장소는 더코지코너라는 카페였다. 상호 때문인지 왠지 아늑해 보였다. 미리 가서 분위기가 어떤지 답사도 하고 공간에 적응할 겸 일찍 출발했다. 약속 시간은 오후 여섯 시였는데 30분 전에 도착했다. 다행히 이름처럼 아늑했다. 대화하기에 좋아 보였고 나 말곤 손님이 없었다. 음료를 시키고 질문지를 반복해 숙지했다. 긴장이 되는지 괜히 화장실이 가고 싶어 몇 번을 들락날락했다. 그렇게 혼자 분주하게 또 초조하게 기다릴 무렵 여섯 시가 됐다. 작가님이 도착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바깥에 나가 기웃댔다. 검문검색 요원이 된 듯 길가 한편을 주시하며 지나가는 모든 행인의 낯을 일일이 확인했다. 혹시나 싶어 작가님께 전화했다. 저는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고. 걸어가고 있다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러길 15분여쯤 지났을까. A 작가님이 백팩을 맨 채 걸어오고 있었다. ‘아, 다행이다. 오시는구나.’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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