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가를 만났던 이유 4
아무 말이나 나열하는 행위는 독이다
https://brunch.co.kr/@seomangsang/26
이전 편과 이어집니다.
아직도 나는 모른다. 무엇이 그의 역린을 건드렸는지는. 그저 내 나름대로 추론해볼 뿐이다. 짚이는 점이 있다. 인터뷰 기사를 어디다 투고할 생각이냔 물음에 난 허프포스트코리아를 거론했고, 그는 글쓴이에게 원고료를 주지 않는 해당 매체의 정책에 부정적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브런치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 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작가에게 눈에 보이는 형태의 이득을 가져다주진 않으니까 말이다.
글도 마땅한 노동이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라야 한다는 점을 헤아리면 수긍이 간다. 나 같이 아마추어야 별 수 없는 일이고 알 수도 없는 심정이지만 분명 프로의 입장에서 글의 가치는 내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다를 것이다. 일종의 상품이니까. 이슬아 작가가 ‘연재노동자’를 자칭하며 원고료와 그에 대한 지급일을 똑바로 명시하지 않는 세태를 꼬집은 점도 비슷한 결의 지적이다. 물론 확실하지는 않다. 정말 이런 생각 때문에 브런치에 부정적인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당초 내 인터뷰 방향이 맘에 들지 않았거나, 내 편지와 현장 사이에서 어떠한 괴리가 있었거나. 답은 없다.
상대방의 이유가 불명확하면 내 문제를 되짚어 봐야 한다. 고백하건대 A 작가님께 언급했던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 브런치에서 연재됐던 글 중 생각나는 작품이 마침 딱 하나밖에 없었기에 변명하듯 말했을 따름이었다. 어쭙잖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한 거다. 브런치에서 어떤 작가들이 활동하는지도 잘 알지 못했는데 읽지도 않은 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다. 의미를 상실한 낱말들이었다. 내 공허한 말이 문장이라는 형태로 말을 다루는 사람에겐 무책임하게 떠넘기는 이야기로 들리진 않았을까. 어색함을 깨뜨린다고 아무 말이나 나열하는 행위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독이 된 듯하다. 괜한 말을 했다.
외부에서 비친 모습만으로 내게도 그러할 거라 기대한 점도 오만이었다. 그도 평범한 사람이다. 방송에서의 모습이 온전한 그라고 볼 수는 없을 테다. 일상은 다르겠지. 전혀 일말의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다. 일 대 일로 만나니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진짜 모습이 나온 걸 수도 있다. 당시 난 명함이 없었으니 가면을 벗어던지기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추측은 곁가지일 뿐이다. 더 중요한 건 만남은 예상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으리라.
아무리 좋은 만남도 끝이 좋지 않으면 첫인상을 망치기 마련이다. 나에게 그와의 끝은 어떠한가. 나는 그를 미워해야 하는가. 고맙게 여겨야 하는가. 둘 다일 것이다. 나는 그가 고마우면서 밉다. 아니 미우면서 고맙다는 말이 더 맞아떨어진다. 돌이켜보니 고마움이 더 크다. 54분 15초라는 녹취 분량. 그리고 같이 길을 걸었던 시간과 저녁을 함께한 시간을 더하면 족히 두 시간 이상을 내게 할애한 셈이다. 일면식 없는 사람에게 그만큼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저녁 시간을 내는 게 아무래도 진짜 어렵습니다.” 약속을 정할 때 그가 내게 했던 말이다. 귀한 시간을 내주었다. 나를 만나려고. 그래, 오늘 난 이 미련을 털어버리려 한다. 못된 미움을 지워버리려 한다.
이제는 당신과 나눴던 대화 녹취록을 삭제하겠습니다. 카카오톡 채팅창도요.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를 만나주어서.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