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터를 두 번 바꿨다. 삼 개월 사이의 일이니 거의 한 달 반에 한 번꼴인 셈이다. 친구는 용케도 자주 옮겨 다닌다고 했다. 합격하는 게 신기하다나. 쉬고 있기엔 불안해서 처절하게 매달린 게 원동력이 됐다고 나는 답했다. 물론 그사이에 떨어진 곳들도 많다. 의욕이 지나쳐 말아먹은 면접들이다. 뭐든 과잉된다면 다른 사람 눈에 부담스럽게 비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곤 했다. 가끔 열패감에 빠질 때가 있었으나 다행히 불안이 나를 잠식하기 전에 나와 맞는 곳에 이직했다.
처음 회사가 힘들어도 너무 힘들었다. 주말까지 울리는 카톡 알림이 신경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대표가 새벽 일찍부터 카톡을 했다. 빠르면 여섯 시고 늦어도 일 곱시다. 설마설마했는데 명절에도 같았다. 신입이니까 쉬는 김에 공부도 시킬 겸 가벼운 업무처리를 맡긴다는 명목이었다. 퇴사를 결심한 결정적 이유다. 알아보니까 경력이어도 시달리는 건 매한가지였더라. 대표의 마인드를 알 법한 말이 하나 기억난다. 회사 단톡방에서 한 이야기인데 참으로 줙(주옥)같다. “우리는 일반 직장인하고는 결이 다릅니다. 워라밸 챙기고 싶으면 딴 곳들 알아보세요.” 회사원이 회사원이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선민의식이 참으로 볼 만한 사람이었다.
사실 이곳에 입사하기 전에 어느 정도 힘들 거라 짐작은 했다. 그저 내 예상을 뛰어넘었을 뿐이다. 참고로 잡플래닛 평점이 1.9였다. 역시는 역시라고 앞으론 별점을 참고해야겠다고 생각해본다. 리뷰 하나를 여기에 옮긴다. “일 많고 돈 많이 주는 회사.” 그래, 내가 입사한 연유는 간단하게 ‘돈’이었다. 네임밸류도 제법 나쁘지 않았다. 관련 업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 있게 명함을 꺼낼 수 있으리란 생각에 적을 두기로 했다. 육 개월 수습 과정이었다. 꽤 길었지만 할 수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웬걸, 첫날부터 사람을 갈아버리려는 게 아닌가. 스트레스 탓인지 당장 그다음 날부터 위가 아프기 시작했다. 한 달 반을 다녔는데 위가 멀쩡하던 날이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게다가 이주차쯤 됐을 땐 살이 홀쭉 빠지기 시작했다. 운동할 시간이 없었는데 취업준비생일 때 축적해놓았던 지방이 녹기 시작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몰라도 자발적인 다이어트는 아니었다. 난 살 뺄 생각이 없었다. 강제 다이어트였다. 몸이 하향곡선을 탔다.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언젠가,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사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관두겠다고 했다. 자초지종을 묻더니 일단 알겠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다음날 출근하니 대표와 면담이 잡혀 있었다. “너 이거 옳은 결정 아니다? 후회할 거야 인마. 인생은 그렇게 결정하는 게 아니야. 길게 보고 다시 생각해.” 나를 철딱서니 없는 녀석으로 취급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언급한 퇴사 사유에 대해서 요목조목 반박했다.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결론은 언제나 반드시 후회한다는 것이었고.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가관이었다. “지금 일본이랑 무역 분쟁 있는 거 알아 몰라? 나라 망하게 생겼어. 취업도 당연히 안 될 거야.” 이게 뭐지 싶었다. 은근한 협박인가. 망국 장사를 하네, 생각했다. 더 들어줄 여지가 없었다. 당장 사직서를 쓰겠다고 말했다. 사실 살짝 겁났지만, 대표의 무리한 발언이라 판단했다. 그렇게 난 ‘일신상의 사유’로 떠났다. 당시는 우리나라 핵심 산업과 관련해 부품 수급 문제가 한창 언론에 오르내릴 때였다. 나라 망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샘솟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언론사들 농간이었다. 대표가 가진 자신감의 출처는 이것이었을까. 도대체 이념이란.
단순히 내가 이곳을 퇴사했으니 나쁜 회사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대표를 힐난하려는 것도 아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배운 게 많긴 했다. 하지만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아버리면서 성장하는 게 정답은 아니라 생각한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누군가에겐 맞을지 몰라도 난 그 말대로 살 생각이 없다. 나를 보고 낙오자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생은 길게 봐야 한다. 대표의 말마따나.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지인이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음악으로 따지자면 인생은 장조로 봐야 해. 단조로 살면 안 된다고 봐.” 자신의 성향이 어떤지 내면을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요지였다. 그러지 않는다면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은 근시안적이라고 했다. 무릇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뻔한 말이다.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뻔하다는 것은 진리에 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는 뻔한 말을 눈앞에 두고도 눈길을 잘 안 준다. 현재 지인은 대기업을 관두고 파트타임으로 커피를 내린다. 남는 시간엔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절대 묻지는 않을 거다. 어련히 잘 살지 않겠나.
한 번 퇴사해보니 두 번째 퇴사는 더 쉽더라. 두 번째 직장도 빨리 관뒀다. 직무 외에 다른 영역의 일을 떠넘겨서였다. 그리고 지금 세 번째 직장으로 이직해 잘 다니고 있다. 일 년째다. 여기도 불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만족한다. 직장이라는 타이틀에 매몰되는 게 아니라 내 삶이 생겨서다. 물론 연봉이 뭉텅이로 깎였지만 난 더 잘 먹고 잘 입고 다닌다. 뱃살도 되찾았다. 지금 늘어난 내 뱃살이 아주 만족스럽다.
그러니까 난 잘살고 있다. 별다른 후회 없이.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