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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머 Oct 13. 2020

너 월급이 얼마니?

“얼마 정도 받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지인(가족도 포함)을 만나면 매우 높은 확률로 듣는 소리다. 내가 받는 액수를 부풀린다거나 숨기지는 않는다. 다만 솔직히 말하고 나면 괜히 뒤가 찝찝하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낮게 볼까 봐. “진짜?”와 같은 대답을 들을 때면, 요새는 내 벌이를 뭉뚱그려 말해야겠다는 솔직한 심정이 든다.     


난 흔히 말하는 사양산업 종사자다. 불구덩이 속에서 일한다. 고용 안정성이 낮다는 이야기다. 대충 업계 사정을 알고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달리 불안감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고 어느 정도 재능도 뒷받침돼 있다고 생각했다. 최소 몇 년은 먹고살 걱정은 뒷일로 미뤄놔도 될 거라 여겼다. 자신 있었다. 

    

같은 꿈을 꾸던 동료 대다수가 업계를 떠났다. 일 년도 안 돼서. 주니어들이 떠나고 고인물들로만 고용시장이 작동한다는 사실은 위기 신호다. 너도 빨리 떠나라는. 그래서 가끔은 없던 조바심을 애써 내본다. 잡코리아, 사람인 같은 구직 사이트에 들러 채용공고를 보며 막연한 미래를 그려보곤 한다. 경력을 온당히 인정받을 수 있을까? 다른 업계로 이직이 가능할까? 싶은.     


언젠가 회사가 갑자기 문을 닫더라도 그다지 놀랄 것 같진 않다. 으레 있는 일이니까. 나 또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할 자세가 되어 있다. 실업급여라는 생명줄도 있고. 애초에 받는 월급도 최저시급보다 조금 높을 뿐이라 실업급여도 내겐 적지 않은 금액이다. 감지덕지다.     


여전히 난 내가 하는 일이 자랑스럽다. 직업적 사명감도 있고 내 일의 무게를 가볍게 취급하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다.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을 한다고 최면을 건다. 설렁설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누군가 내 직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는다면, “얼마 받아?”가 아닌 “어떤 일을 해”라는 질문이었으면 좋겠다. 왜 사람들은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걸까. 왜 구체성은 항상 액수여야만 하는 걸까.   

  

이따금 빈말로라도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묻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이 있다. 내게는 그들의 안부 인사가 이렇게 들린다. “버텨라, 잘하고 있다”라고. 

     

고마운 마음이다. 내 가치를, 나를 인정해주는 듯하여. 응원해주는 듯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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