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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머 Oct 11. 2020

나의 안식을 위하여

난 항상 반응이 느리다. 대화가 끝나고 나서야 뒤늦게 말이 떠오른다. 혹은 말하고 싶은 바는 생각나지만 정작 입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어쭙잖게 현란한 척 말하기보단 입에 거미줄을 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다. 떠오른 바를 논리정연하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말재주가 내겐 없다. 그저 그때 상황을 곱씹고 시뮬레이션을 돌려 정연한 나를 상상할 뿐이다.    

 

하지만 그때 그런 말을 해야 했어, 라고 후회하는 순간들이 있다. 몇 년이 지나도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순간들이다. 침묵이 금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반대로 침묵이 독이 될 때도 있는 법이다. 언어의 유창함을 떠나서 나를 괴롭히는 낱말과 문장에는 대항할 필요가 있다. 침묵은 순간이다. 영원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발화자가 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리고 난 그 운명을 받아들일 생각이다. 나는 나를 괴롭히는 문장을 참지 않기로 했다. 나의 안식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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