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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품있는그녀 May 31. 2021

너와 나는 동등해

힘의 균형 맞추기

나는 나의 상처 받은 영혼을 들여다보았다. 나의 영혼은 정말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채로 아파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겠는 채로 그렇게 살아왔다. 착하게 살면 모두가 다 받아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나는 늘 누군가를 찾아 헤맸다. 아마도 사랑이었을 것이다. 내게 사랑을 줄 사람, 무한한 애정을 줄 사람을 그렇게 찾아다녔던 것 같다. 그래서 내게 마음을 열어 따스히 대해주는 사람에게 온 마음을 다해 다가갔다. 그리고 보통은 크게 상처 받고 돌아서고는 했다.


결국 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이었다. 끝까지 나에게 무관심했던 부모님. 끝까지 나를 이용하기만 했던 부모님. 우리는 이런 관계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데, 나는 계속 무언가를 기대하며 살고 있었고, 그래서 계속 상처 받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원망했다. 욕하고, 비난하고, 잘못을 지적하고, 다시 또 욕을 했다. 그리고 울었다. 펑펑 울었다. 꺽꺽거리면서도 나는, 부모님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나를 이렇게 병들도록 내버려 둔 부모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내 기억 속에 저장된 그 모든 생생한 학대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때 느꼈던 공포를 하소연했다. 그리고 얼마나 나쁜 행동이었고, 얼마나 무자비했으며, 얼마나 무책임했고,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한 나쁜 부모였음을. 그리고 그것을 내 탓이라며 나를 병들게 하고, 나를 고통 속에 내버려 뒀으며, 나를 위로조차 해주지 않았음을. 그 모든 냉정함을 다 기억하는데, 그것을 사랑이라고 포장하며 이제와 효도하고 공경하라고 하는 것이 분하다고, 나는 그렇게 절규했다.


나는 그런 당신을 용서할 수 없었고, 그러므로 친절하게 대할 수 없고, 그래서 그동안 사사건건 당신의 잘못을 따져 물었던 것이며, 당신이 실수할 때마다 이해해 넘기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과 나의 불협화음은 내가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는 막돼먹은 사람이거나 부모덕을 모르는 불효자라서가 아니라, 받은 사랑이 없는데 요구하는 당당함이 거슬렸던 거라고 호소했다.


나는 아직도 너무 화가 나고, 당신을 부모로서 인정할 수 없으며, 나는 받은 만큼만 돌려줄 수 있다고 했다. 그것도 내 기분 내키는 대로 할 것이며, 오히려 남들은 다들 도움받고 사는데, 나는 도와드리며 사는 것이 마치 소모당하는 것 같아서 매우 불쾌하다고 했다.


나는 앞으로 어떤 도움도 주지 않을 것이며, 어차피 도움받지 못할 바에는 나 혼자 알아서 잘 살아갈 것이고, 도움을 바라지도, 그것을 바라면서 도와주지도 않을 것이며, 내가 그동안 받지 못하고 빼앗긴 만큼 다 챙기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모든 것은 나 혼자서 한 말이었다.


정우영 tv에서 대표님은 3차원과 4차원에 대해 이야기해주십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상대가 없는 자리에서라도 하는 것. 그것은 나의 몸은 3차원에 있으나 정신은 4차원에 가서 4차원의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과 같다고 말입니다. 지금 내가 현실에서 상대 앞에서 말하지 못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정신세계의 상대방에게는 말했고, 나는 나를 지킨 것입니다.


나의 자존감이 짓밟혔고, 무시당했고, 공격당했고, 상처 받았다면 그 모든 것에 있어서 상대와 나의 관계는 '가해자 vs 피해자' 관계이다. 이는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다.


분노를 다스리는 3단계를 거쳐서 나의 감정 상태(화, 우울, 강박, 슬픔, 두려움 등)를 인지하고, 그런 상태임(내가 그러함)을 인정하고, 상대방과 자신의 잘못을 구분하였다면 이제는 힘의 균형을 맞추는 단계다.


상대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상대를 향해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한다. 내 속에 맺혔던 말, 나를 대변하는 말, 나를 변명하는 말, 나를 호소하는 말 등.... 나의 아픔을 말하고, 상대의 잘못을 상대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그리고 '나는 앞으로 당신에게 어떻게 하겠다'라고 선언한다. 또는 '나는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이렇게 할 것이다.'도 좋다.


무너진 힘의 균형 관계는 나를 늘 작아지게 만든다. 나는 작아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가해자 앞에서는 늘 스스로 위축된다. 가해자도 자기가 나를 '정복'했음을, '힘적 우위'를 안다.


나의 이 모든 혼잣말은 놀라운 힘을 가진다. 무너진 나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며, 억눌린 마음을 활짝 펴준다.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게 된다. 가해자는 더 이상 나를 지배할 수 없게 된다.


내 경우, 이 과정에서 욕이 나오면 욕도 하라고 교육받았다. 상대가 듣지 않으니까. 나 혼자 있으며, 상대 면전에서 하지 않을 것이므로. 이렇게 들리지도 않는 욕, 들리지도 않는 하소연을 해서 뭐하나. 시간낭비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못할 것은 뭔가. 나는 그랬다.


왕따 피해를 당했을 때, 가장 믿었던 사람이 주동했다는 사실에 분개하고도 한 마디도 못했다는 사실에 얼마나 분개하게 되는지 아는가? 오히려 말을 꺼내면 내가 더 이상해지기만 하니, 한 마디 못하고 있다는 것을 저들도 알고서 킥킥거리면서 웃는다. 그것은 면전에다 대고 하는 기만 아닌가.


나는 내가 믿었던 사람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하소연했다. 나를 기만한 것에 대하여, 나를 호구로 본 것에 대하여, 나의 자존감을 짓밟은 것에 대하여, 항의하고 비난했다.


때로는 노트에 쓰기도 했고, 때로는 녹음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영상으로 찍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상대가 내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내가 그 당시 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냈다.


솔직히 좋았다. 속이 뻥 뚫렸고, 개운했다.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내 마음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알아줘서 고마워.'라고. '사이다 날려줘서 고마워.'라고.


나는 점차 내 마음과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편을 들어주고, 내 마음을 알아주고, 그런 마음을 인정해주고, 속 시원하게 화도 내주니까. 내 마음이 행복해는 것 같았다.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내 마음에게 말했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다시는 널 아프게 하지 않을게. 너를 혼자인 듯 내버려 두지 않을게. 네가 아프면 언제든 찾아와 알아줄게. 네 감정 무시하지 않을게. 이제 내가 널 지켜줄게."


그 선언은  폭포처럼 내 전신을 훑어 내렸다. 나는 다시금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나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를 보호해야 함을 깨닫는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기본이다. 타인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은, 나의 성이 얼마나 견고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견고함은 바로 자기 사랑이다.


"앞으로는 이렇게 하겠다"라는 선언은 상대에게 내 마음에서 벌을 내리는 것이다. 용서할 필요는 없다. 용서를 할 수 없다던가,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던가, 만나도 모르는 척하겠다던가. 비록 소심해 보일지 몰라도 나만의 단죄를 한다. 내 마음이 괜찮아질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내 마음의 힘을 기른다. 운동 동호회 등에 가입을 하던지, 취미 활동을 하거나 자기 계발을 한다. 또는 종교활동, 기도 등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보듬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의 지지세력을 확보하여 내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며, 나를 편들어주고 믿어주는 사람이 많다는 믿음으로 이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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