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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Jul 21. 2017

빛으로 가득 찬 책의 광장

별마당 도서관

00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코엑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코엑스에서 매일 같이 친구들을 만났다. 놀기 좋은 곳이었다. 먹을 것도 많고, 영화관과 오락실까지 있었다. 아직 가로수길이든 경리단길이든 해방촌이든 핫한 동네가 없던 시절이었다.


대학교에 다니며 활동 범위가 점점 넓어지던 와중에도 종종 코엑스에 들렀다. 꼭 가야만 하는 날이 정해져 있었다. 타는 듯이 더운 날, 비가 억세게 내리는 날, 귀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추운 날. 지하철에서 내려 굳이 바깥으로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실내에서 쾌적함을 만끽하며 놀고먹을 수 있으니 궂은날에는 코엑스만 한 곳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코엑스는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1년 8개월 동안이나 진행되는 큰 공사였다. 이해할 수 있었다. 코엑스는 14년 동안 활발히 이용되면서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텼다. 공사가 진행되는 내내 얌전히 기다렸다. 오래 진행되는 공사인만큼 그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은 코엑스를 잊었을 것이다.


마침내 코엑스가 새로 오픈했던 때, 잊지 않고 코엑스를 찾았다. 새로운 점포들이 아직 모두 오픈을 하기 전, 새하얗게 변한 코엑스의 길을 걸었다. 파랗고 네모난 기둥들이 모두 하얗게 변해있었고, 바닥의 패턴과 벽의 형태가 바뀌었다. 순식간에 나는 길을 잃었다. 오랜 시간 익혔던 랜드마트들이 모두 사라져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챌 수 없었다.



리모델링은 나에게 있어서 많은 아쉬움들을 남겼다.  리모델링 설계를 진행한 정림건축은 최선을 다했지만, 코엑스는 태생적인 한계가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굵은 기둥들을 건드릴 수 없었고, 층고를 더 높일 수 없었다. 그러한 한계를 딛고 가장 큰 변화를 꾀한 곳은 역시 푸드코트로 쓰이던 광장이었는데, 그곳만은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막혀있던 피라미드 모양의 구조 대신 훌쩍 높아진 흰 지붕 구조가 내부로 쏟아지는 빛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공간을 나누고 있던 음식점 칸막이와 분수가 사라지며 큰 공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주제,  '별마당 도서관'이 들어서는 배경이 되는 공간이다.




01 시원하게 뚫린, 열린 공간


공간을 감동스럽게 만드는 요소들이 몇 가지 있다. 그러니까 공간을 훌륭하게 만들 수 있는 지름길. 높은 층고와 공간을 가득 채우는 햇빛과 벽면을 빼곡히 채우는 책들. 그런 의미에서 이곳, 별마당 도서관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몇 가지 공간의 구성 조건을 어렵지 않게 만족한 셈이다.



별마당 도서관에 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는 문을 지나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바뀌었음을 쉽게 알아챈다. 공간의 크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평소 느낄 수 있는 공간보다 몇 배 더 크다. 코엑스 지하 길보다 3배 이상 높은 층고를 가진 공간이 깨끗하게 정리되자 공기부터가 다르다.



높고 넓은 공간을 최대한 살리기 위하여 외부에서 진입할 수 있는 1층 부분의 바닥면적을 무리해서 넓히지 않았다. 공간의 테두리를 두르며 출입구와 함께 사람들이 머무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공간들만을 남겨놓았다. 외부공간에서 이어지는 바닥을 더 넓혔다면 바닥 면적은 늘어났을지 몰라도 공간 자체는 작아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 큰 공간을 모두 어렵지 않게 소화한다. 에스컬레이터로 오르내리고, 책 전시대를 가로지른다. 누군가는 그저 코엑스 몰을 지나는 사람들이고, 누군가는 이곳에서 책을 구입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이다. 때로는 이곳에서 강연이 열리고, 전시가 진행된다. 크게 열려있어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것 같아도, 더 많이 채워질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02 공간의 패턴


어쩔 수 없이 서가가 들어서면 공간에는 패턴이 생겨난다. 우리가 읽는 책에는 정해진 사이즈들이 있고, 책을 보관하는 책장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형태가 있다. 책이 네모난 이상 책장이 둥글게 디자인되기는 힘들다. 효율을 위해서 우리는 벽을 나눠 책을 높이 쌓아 보관할 수 있게 하고, 구조적 안정성을 위해서 책장 사이에 기둥 역할을 하는 부재를 끼워 넣는다. 벽을 꽉 채운 책장이 멋진 이유는 균일함일 것이다. 균질하게 나누어진 면에서 느낄 수 있는 안정감.



높은 층고를 가지고 있는 이상 높은 책장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까지 함께 지닌 것인데, 별마당 도서관은 그 이점을 최대한 끝까지 이용한다. 무리했다고까지 느껴질 정도로 책장을 높게 짜 올렸다. 무리했다고 느낀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사람의 크기로는 어느 이상 높이 올라간 책을 볼 수도, 꺼내 읽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책을 모두 채워넣지도 못했다. 기능을 잃은 디자인이다. 책을 꽂아 넣지 못했기 때문에 서가라고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책장을 경험한 바 있다. 파주 지혜의 숲도 마찬가지로 높이 올린 서가들이 존재하지만 그 책을 꺼내 읽을 수는 없다. 지혜의 숲 사진을 처음 보고 굉장히 기대하며 방문했지만 가장 실망한 부분은 바로 서가의 상층부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어찌 보면 높은 서가들의 한계일 것이고, 어느 정도 디자이너의 타협점이었을 것이다.



서가와 함께 찾을 수 있는 공간의 패턴 한 가지가 더 있다. 직사각형으로 나뉜 서가의 격자 형태와 다른 방향에서 또 다른 패턴이 생겨난다. 항상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나타나는 패턴. 외부에서 들어오는 햇빛에 의해 상부 지붕 구조의 그림자가 바닥에 넓게 깔리고 그 아래로 사람들이 지나갈 때 문득 궁금해진다. 이곳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바닥에 맺힌 그림자의 패턴을 인식하고 있을까?




03 누구나 머무를 수 있는 도서관


도서관이라고 명명하면, 왠지 모르게 열린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보통의 도서관들은 지니고 있는 책들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하여 방문객에게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요구한다. 그것이 도서관 회원증이 되었든, 학교 학생증이 되었든 도서관 입구에는 지하철 출입구를 연상케 하는 보안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지역 도서관도 마찬가지이고, 학교 도서관도 그렇다. 특히 학교 같은 경우에는 학교 학생들 이외엔 출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그런 의미에서 별마당 도서관은 도서관의 폐쇄적 성격을 시원하게 갖다 버렸다. 정해진 출입구도 없고, 신분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도서관보다는 서점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도서관이라고 불릴 수 있게 만드는 근거는 별마당 도서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이 누구나 들어와 머물 수 있도록 하는 테이블과 벤치들이다. 누구도 그곳에서 무얼 하든 제지하지 않는다. 자유로이 앉아서 얼마든지 눈치 보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공공적 성격이 강하다. 



스타벅스가 강력한 이유는 혼자서든, 함께든 언제든지 방문해서 책을 읽든, 과제를 하든, 이야기를 나누든, 미팅을 가지든 많은 행위를 시간의 구애 없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별마당 도서관도 많은 행위를 담을 수 있는 그릇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서울에 이런 곳이 하나 더 생겼다니, 아주 좋은 일이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사람들이 책과 멀어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공간의 수요는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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