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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Sep 05. 2018

굳이 따지자면 나의 케렌시아는 잠일 수도 있겠다

굳이 따지자면 나의 케렌시아는 잠일 수도 있겠다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본 적이 없다. 피곤과 피로가 내 어깨를 짓누르던 밤,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가 눈을 감았다 뜨면 그새 날 괴롭히던 노곤함은 모두 사라지기 일쑤였다. 꿈도 잘 꾸지 않고, 잠귀도 밝지 않고, 눕기만 하면 잠이 쉽사리 찾아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난 좀 늦게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기도 했다. 아마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잠을 좋아하게 된 것은 잠으로 인해 체력과 에너지가 쑥쑥 회복되는 그간의 경험들이 축적되었기 때문일 수도.


잠은 다시 새로운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보충하는 행위이기도 했지만, 내가 도망치는 장소이기도 하다. 생각이 너무 많아질 때, 도대체 해결하기가 힘든 문제들이 줄지어서 날 기다릴 때 나는 그것에 부딪히기 전에 언제나 이른 잠을 청했다. 스트레스에 짓눌려 숨이 막히게 답답하던 마음은 잠으로 시간을 얼마만큼 보내고 나면 조금 나아졌다. 작게나마 문제에 맞설 용기를 주기도 했다. 굳이 따지자면 나의 케렌시아*는 잠일 수도 있겠다.



요즘은 일요일 저녁이면 쓰러지듯 잠에 든다. 말 그대로 쓰러지듯. 어제는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돌아왔다. 주말 이틀 동안 에너지를 회복해야 하는데, 주중에 쓰고 남은 에너지를 다 끌어다가 탕진하고 방전된다. 나에게 스트레스는 낯선 사람들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 월요일이 되기 전에 다시 사람들과 부딪힐 힘을 얻기 위해 잠으로 급속 충전.



*스페인어로 케렌시아(Querencia). 피난처, 안식처를 의미한다. 투우 경기장에서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소가 잠시 쉬는 곳을 뜻하며, 최근에는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나만의 휴식처를 찾는 현상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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