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아키 Sep 14. 2019

추석의 방문 집사

애기에 대한 기록 2

명절이면 내 친구 빔은 애기를 부산으로 데려가거나, 호텔에 맡기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던 것이 예민한 고양이인 애기는 머무는 장소를 옮기면 내내 스트레스를 받아 곡기를 끊곤 했던 것. 그렇다고 집에 두면 누군가에게 밥을 부탁해야 하는데, 낯선 이가 집에 들어오는 것도 애기를 놀라게 하긴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언젠가 빔이 여행을 갔을 무렵, 밥을 주려 빔의 집에 갔던 때가 있었다. 빔의 부재로 애기는 스트레스를 잔뜩 받아 침대 이불 아래에 숨어 나오지도 않고, 밥을 먹으러 나왔어도 내내 불만스러운 울음소리를 냈다.


미안해. 너 밥 주러 온 거야. 괜찮아? 빔이 없어서 그렇지?


원하는 바를 딱 말해주면 좋으련만, 애기는 바닥을 구르고 날 노려보며 무언가 텔레파시를 보내는 듯했지만, 낯선 사람이던 나는 그 메시지를 모두 이해하지 못했었다.


*이에 대한 글도 당시에 썼었다. https://brunch.co.kr/@seonarchi/98




올 추석을 맞아 작업실을 함께 쓰는 빔과 노숀은 모두 부산으로 내려갔다. 작업실을 빔의 집과 합친 후 맞는 첫 명절이었다. 애기는 집에 머물기로 했다. 내가 밥을 주면 되니까.


애기야. 잘 있었어?

애애용. 애애애애용. 긁긁긁.


작업실의 잦은 방문으로 나에게 익숙해진 애기는 이제 퍽 나를 환영해 준다.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면, 높은 소리로 울고 카펫을 긁는다. 반갑다는 뜻 같다.



나의 다리를 마구 스치면서 지나가다가, 벌러덩 들어 누워 구르기 시작한다. 역시, 좋다는 뜻 같다. 가지고 온 짐을 정리하는데 졸졸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내가 혹여나 꼬리를 밟거나 애기를 못 보고 찰까 봐 걱정인데 얘는 위험하게 내 발과 발 사이를 유유히 지나다닌다. 결국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조심히 내디뎌야 하는 것은 나인데, 그래도 어디엔가 들어가 대답도 안 하고 숨어있는 것보다는 이 편이 낫다. 애애애용. 애애애애애용. 어디갔다 왔냐고, 너만 왔냐고 그렇게 묻는다.


애기는 아무도 없는 사이에 밥그릇을 뚝딱 비웠다. 밥을 잘 먹는 걸 보니, 그래도 스트레스는 안 받고 있는 모양이다. 밥을 채워주고, 물도 갈아줬다.




이제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덥지 않은 가을 날씨라, 닫혀 있던 창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창을 열었더니 훌쩍 책상 위로 올라와 창밖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창밖에 뭐가 있는지, 움직이지도 않고 뚫어지게 바라본다. 뭐가 있어? 뭐 움직이는 것이 있어? 생각해보면 앞집 고양이도 그렇게 창에 바짝 붙어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에게 발견되곤 했다.



작업실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어디 가지 않고 컴퓨터가 있는 작업방에 애기도 함께 머문다. 옆으로 누워 날 빤히 바라보다가, 내 다리 사이를 스쳐 지나가다가 발을 넣고 식빵을 굽는다. 그 모습에 내가 쪼르르 다가가 묻는다.


잘 지냈어?

애애용.

심심했어?

애용.

밥은 잘 먹었고?

애애요옹.



내 물음에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대답을 해주는 천재 애기.





지금은 다른 의자에 누워 잠을 청한다. 내가 틀어놓은 노래소리 때문에 시끄러울 텐데도, 어디 가지 않고 눈에 보이는 곳에 있다. 예뻐라.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인생 첫 고양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