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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앤 Aug 29. 2024

나도 가끔은 엄마가 미워진다..

복합 트라우마 - 치유의 시작 (1)


복합트라우마라는 용어는 복합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Complex PTSD)를 말한다. 천재지변이나 큰 사고, 성폭행과 같은 빅 트라우마가 아닌 스몰 트라우마이다. 특별히 어린시절 주 양육자인 부모로 부터 성장과정 중 오랜 시간동안 지속적이며 반복적인 사건에 대한 반응이다.  어린시절에 일어난 트라우마 사건은 어린아기가 예측할 수 없었고 혼란스러웠고 두려웠던 경우가 많다. 부모나 보호자로 부터 가해지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이며 은밀한 신체적, 정서적인 학대, 방임, 무시하는 것, 방치하는 것은 어린 마음에 외상으로 자리 잡으며 그의 어린시절 뿐만 아니라 평생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늦게 시작한 상담학 석사과정중에 나는 내가 복합트라우마 생존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로 이것은 나에게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안겨 주었다. 어찌나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힘들었던지, 차라리 과거에 이유도 모른 채 늘 불안하고 우울하고 대인관계가 힘들고 예민하고, 좀 외로운 정도로 살았던 때가 더 나았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20대초반에 삶의 의미를 몰라 방황하던 때에, 삶을 그만 두고 싶어 날마다 괴로워하면서도 퇴근할 때에는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빵집에 들러 단팥빵을 사가지곤 집까지 가는 골목에서 다 먹어 치우던 나. 최근 읽었던 한 책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의 원제목이었다던 ‘죽고 싶은데 살고 싶다’ 라든지 아니면 ‘죽고 싶은데 떡볶이는 먹고 싶다’ 라는 책제목들이 너무나 이해가 되던 나를 하나님이 20대 중반 어느 날 만나 주셨고, 새 삶을 주셨고, 난 이후로 새사람이 되었다. 이러했다는 해피엔딩만 유지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하나님은 그 즉시 나를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으셨을까? 나의 성화와 이 곳에서의 사명이 남아서라고 우리는 이해하고 있고, 그것은 아마 어느정도는 정답일 것이다.


가정을 정신질환의 전쟁터로 책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의 저자와 같은 관점으로 바라본 그곳에서 나는 나 자신이 피해자였고 가해자였다는 것, 또 때로는 이 전쟁터에서 함께 싸운 전우 같기도 한 가족이란 딜레마를 뼈저리게 생각하게 된다.  가정은 아픔을 낫게 하는 둥지임과 동시에 악이 대물림되는 공간이라는 딜레마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많이 생각하게 된다.


견뎌내기 그리고 살아남기. 오늘 내게 필요한 것 역시 살아남기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로부터 살아남기.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살아남기. ‘죽고 싶으면서도 살아남고 싶은 것이 영혼이 아픈 사람들의 이중적 증상이며 속성’이라며 ‘죽고 싶은데 살고 싶도록’ 도와주는 것이 의학과 신앙의 목표여야 한다고 하는 저자의 마지막 외침이 마음을 울린다. ‘살아남아야 한다, 다시! 난 살아남았는데 무엇을 위해 살아 남아있는 것일까? 저자처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고통가운데 있는 가족들과 아픈 자들을 돕는 일을 하기 위해서 일까? 조금 더 나아가서 내가 이대로 다른 사람을 상담하고 도와줄 수 있을까?  뇌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돌보는 가족의 어려움을 보면서 그들을 위해 애쓰는 저자를 보면서 나는'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기대보다는 오히려 너무나 큰 두려움을 느낀다.


대부분의 복합트라우마 당사자들과 다르지 않게 나는 오늘까지 나에게 나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고 그런 부분에 전혀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제 나는 복합트라우마 생존자라는 자리에서 치유의 긴 여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제 나는 어느 때라도 솟구쳐 올라와 나를 압도하던 나의 슬픔을 찾아 나의 내면을 향해 떠난다.

버리고 싶었던 그 슬픔을 만나 인정해주고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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