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여기 좀 봐봐
방에 엄마가 없길래
이때다 싶어 변신했어
감춰둔 손톱을 날카롭게 내밀고는
무엇이든 할퀴어 버렸지
우편물은 죄다 뜯어버리고
커튼을 찢어버렸어
지우개 가운데가 움푹 파였고
알림장은 너덜거렸지
날아다니는 종잇조각이
눈처럼 하얗게 쌓여
집안을 차갑고 차갑게 만들었어
여기 좀 봐봐
화장실에 아빠가 없길래
이때다 싶어 변장했어
앞머리를 눈 밑까지 내리고
눈을 가려버렸지
커튼이 망가져서
해는 깊이깊이 들어오는데
나는 어쩐지
온통 까만 하루를 보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