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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May 23. 2018

과일 대모험, 일상의 풍요를 만들다

[10호] 주민기고|글 박범기

‘과일 대모험’ 의 시작

  과일이 먹고 싶었다. 하지만 먹기 힘들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비싸서. 마트에서 조금씩 사다 먹기에는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렇다고 박스 채로 사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7.5kg짜리 배를 한 박스 산 적이 있는데, 한참 먹다가 절반 정도를 썩혀 버린 적이 있었다. 아까웠다. 그 다음부터는 과일을 박스 채로 사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다 먹지 못하고 버리게 될 거니까. 그래서 그냥 과일을 먹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먹지 못했다. 별로 아쉬운 것도 없었다. 과일을 못 먹는다고 죽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그럭저럭 지내다가 올해 초, 두 달 가량 유럽 여행을 갔다 왔다. 유럽은 과일이 매우 쌌다. 그래서 거의 매일 과일을 먹고 다녔다. 그러다가 한국에 다시 돌아오니 과일이 먹고 싶어졌다.

  과일이 비싸서 과일을 못 먹는 것이 나만의 일은 아닌 것 같았다. 혼자서, 혹은 둘이 사는 사람들이 과일을 먹기에는 비용 부담이 너무 크기때문이다. 몇 명을 모아서 과일을 공동구매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성북동에 살고 있는 1-2인 가구 다섯이 먼저 모임을 시작했다. 가구 당 월 1~2만원을 걷고, 그 돈으로 과일을 사서 나누기로 했다. ‘과일 대모험’이라는 모임 이름도 정했다.

  몇 가구가 모여 함께 과일을 사서 나눠 먹는다, 사실 이 발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실현시키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마을’이나 ‘이웃’ 같은 단어가 개념으로만 남아 있는 2017년 한국 사회에서 함께 과일을 사서 나눠 먹을 만한 이웃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는 운이 좋았다. 같이 하우스 셰어를 하는 이가 성북동에 아는 사람이 제법 있었고, 때문에 모임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쉽게 모을 수 있었다.


일상의 풍요, 그 멀고도 험한 길

  여러 가구가 모여서 과일을 함께 나눠 먹는다. 이 별 시답잖은 일 때문에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이게 뭐라고 인터뷰까지 하게 됐을까 싶었다. 그러다가 다들 사는 게 너무 빡빡하다는 새삼스러운 현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사실 그렇다. 내 주위만 둘러봐도 밥 한 끼 챙겨 먹는 일이 쉽지 않은 이들이 꽤나 많다. 그것을 위해서는 돈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경우, 밥을 먹기보다는 끼니를 때우는 것에 그친다. 특히 저임금과 과잉 노동에 시달리는 상당수의 청년들이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밥이 아닌 과일이야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유기농 재배를 통한 질 좋은 과일을 먹는 일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과일대모험’을 진행하면서, 나는 되도록 무농약 혹은 유기농으로 재배한 과일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대개는 생산자 직거래 사이트를 통해서 과일을 구매했다. 그것이 나의 일상의 풍요를 가꾸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일상의 풍요를 누리는 일. 누군가는 사치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살아가는 데 있어 이것이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수준 안에서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물론, 일상의 풍요를 가꾸는 데 있어서는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꼭 돈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과일대모험’을 통해 월 1~2만원 수준으로 질 좋은 과일을 먹게 되었듯이, 각자가 자신의 일상의 풍요를 위해 이런 저런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런 고민을 하기에는 시간이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각자의 삶을 위해서 이런 고민이 유의미하다고 믿는다.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작은 모임

‘과일 대모험’은 매달 1회에서 2회 진행되는데, 모임 장소는 각자의 집이다. 정기적으로 각자의 집에 사람을 초대하고, 모임을 진행하는 경험.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이지만, 오늘날에는 사라져버린 일이다.

공동체라는 것이 희소해져버렸기 때문이다. 모임을 하면 단순히 과일을 같이 사서 나누어 가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게 된다. 같은 동네에 사는 이들 사이에 유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작은 모임들이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이런 식의 작은 모임들이 더 많아지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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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기는 문화연구자이다. 성북동 공동체주택 ‘따로 또 같이’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성북동과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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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0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7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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