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언제나 밀루유떼
"하늘이 무너져도, 땅이 꺼져도, 지구를 백 바퀴 돌아도 내 마음은 언제나 밀루유떼(Miluju te)."
2005년에 방영된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의 명대사다. 김은숙 작가가 극본을 쓴 프라하의 연인은 솔직 담백 외교관과 용감무쌍 말단 형사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있다. 드라마 속 장소로 프라하를 선택한 이유는 중세 유럽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아름다운 도시며, 파리의 화려한 느낌과 달리 빛바랜 느낌을 주는 프라하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다시 사랑하게 되는 드라마의 주제와 잘 맞는 도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 역시 프라하를 그렇게 생각한다. 프라하를 보고 있자면 선명하기보다는 필터를 낀 것처럼 감성이 더해진다. 모든 풍경에 로맨스가 입혀지고, 낯선 말도 부드럽게 들려온다. 이날 밤도 신랑이 건넨 꽃으로 따뜻해졌다.
신랑은 바르셀로나에 이어 프라하에서도 꽃을 사주겠다며 길가에 큰 꽃집으로 들어갔다. 꽃집에서 가장 크고 싱싱한 장미를 골랐다. 점원이 무심하지만 척척 빠르게 포장을 해준 꽃을 들고 나오는 길,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어깨가 펴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지며 생긋 웃음이 났다. 나긋나긋한 성격이 아닌지라, 신랑에게 고맙고 꽃이 정말 예쁘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마음속으로는 마냥 신이 나있으면서도 말이다.
프라하를 닮은 장미를 들고 가이드분이 추천한 시민회관(오베츠니 둠)의 1층 카페 Kavarna에 왔다. 선선한 날씨도 즐기고 사람 구경도 할 겸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비엔나 커피랑 맥주를 주문했다. 비엔나 커피는 휘핑크림이 절반이나 차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커피 고유의 맛이 진했다기보다 풍경과 분위기가 맛을 더했다. 모든 테이블이 외국인이다 보니 우리는 그 어떤 대화도 자유롭게 나눌 수 있었다. 소소한 이야기도, 진지한 이야기도 주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았다.
커피 한 잔과 맥주 한 잔을 비우고 호텔로 가는 길. 광장에서는 어떤 거리 악사가 와인잔 연주를 하고 있었다. 각 와인잔마다 크기도 다르고, 담긴 물의 양도 다르다. 와인잔과 손의 마찰을 통해 음을 내는 것인데 입이 벌어질 만큼 대단하다. 어느 노래보다 듣기 편안했고 평화로웠다. 이 밤에 로맨틱 한 방울을 더해주는 연주였다.
이 모든 것이 과거가 된다는 두려움에 사진과 영상을 많이 담아두었다. 살아가면서 힘들고 슬픈 날, 이때의 추억이 달디 단 약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눈을 감아도 프라하의 길목이 훤히 보일 정도로 보고, 듣고, 외웠다. 프라하를 즐기는 그의 모습도 많이 봐두었다.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사랑하게 된다는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의 내용처럼 우리도 크고 작은 상처를 딛고 나서야 만나게 되었고, 결혼을 해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왔다. 앞으로 살면서 하늘이 무너질 것 같고 땅이 꺼질 것 같아도 언제나 밀루유떼 해야지. 그가 사줬던 프라하의 장미처럼 언제나 싱그럽게 웃어줄 것이고, 가장 큰 지지자가 되어 줄 것이다.
아 맞다. 부끄러워서 말 못 했는데,
밀루유떼(Miluju te)는 체코어로 사랑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