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는 때로 시차를 두고 만들어진다.
2023년 가을학기에 교환학생으로 갔던 샴페인에서 돌아온 지 반 년이 넘었고, 샴페인으로 떠난 지는 1년이 되어 가는 지금에서야 하위-일기 (문보영 시인의 책에서 본 말이다) 를 다듬어 일기로 재탄생시키는 중이다.
인천공항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전날까지만 해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떠나는 당일이 되자 그제야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혼자서 미국에 가다니.
집이 아닌 곳에 있던 최장 기간은 기숙사에서 보낸 거였는데, 그마저도 최대가 한 달이었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라고는 학교에서 함께 교환학생으로 파견된 조금 어색한 5명밖에 없는 미국에서 혼자 4개월 동안 살아야 한다고?
새벽에 일어나서 공항으로 가는 내내 이런 생각이 휘몰아쳤는데, 그 와중에 가족들과 남자친구가 처음으로 함께 식사를 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어찌저찌 정신을 부여잡고 인사를 나눈 다음에 검색대를 통과했다.
이제 진짜 혼자였다.
탑승구 근처 의자에 앉으니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아이패드에 전자책을 다운받았다.
백수린 작가의 <폴링 인 폴>.
탑승 시각이 되기를 기다리며 부모님과 할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남자친구와 통화를 했다.
4개월 후에 만난다는 게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건 너무 불안해서 외면하고 싶은 마음일까?
머리로는 내가 미국에 간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한국에 머무르고 싶어서, 머리와 마음 사이에 발생한 시차인가 보다.
인스타그램에 공항 사진을 올리니 친구들에게서 하나둘 연락이 왔다.
-조심해서 잘 갔다 와아!!
-잘 갔다와... 나 잊으면 안 돼...ㅜ
-으아으어엉 잘 다녀와ㅏㅜㅠ
나를 응원해주는 마음을 받으니 힘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이 있는 곳에 그대로 머무르고 싶었다.
그렇지만 머리가 하는 말을 따라 탑승구를 지나서 비행기에 탔다.
아직 비행기에 타지 못한 채 공항 의자에 앉아 있는 마음도 곧 데려올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