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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하 SEONGHA Sep 29. 2024

나의 직업을 사랑해

두고 가야 하는 것들을, 더 사랑해야만 해

하루하루 시간들이 너무 소중해요. 가까스로 붙잡으려 해도, 기억들이 흩어지고 옅어져요. 이번주에는 제주도를 여행했어요. 연락하던 친구를 만났고요. 그 친구와 헤어져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 묵으며, 새로운 친구도 만들었어요.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냈네요. 오래 기억하고 싶어요.

그래서, 사진도 많이 찍고, 글도 쓰면서 그 기억들을 붙잡으려 했어요. 하지만, 점점 더 희미해져요. 그날들을 더 간직하고 싶은데, 그 풍경을 더 기억하고 싶은데, 찍었던 사진들을 다시 볼 때마다, 점점 더 희미해져요. 낯설어져요. 하루하루 더 그래요.


여행을 끝 마치고, 승선 전에 업무협의를 위해서 집이 아니라 바로 회사로 갔어요. 회사에서, 해운업계에 대한 최신 근황들과 앞으로 회사의 방향성을 전해 듣고, 본선에 승선하여 어떤 방향성을 띄어야 하는지 전달받았어요. 곧 이 나라를 떠날 것을 실감해요.


지금의 이 땅에서의 기억을 소중히 여겨요. 지금의 이 상태가 너무 좋거든요. 지금의 이 가치관이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걸 알아요. 오래오래 간직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싶지만, 승선을 마치고 다시 왔을 땐, 전과 다를 거 같다고 느껴요. 그래서 내면의 자아들이 종종 싸움을 하고 있어요.


승선을 하면서는 지금과 같은 생각들, 사색들, 관념들이 위험할 수 있어요. 지금은 관대하게 사물과 사람들 그리고 누군가의 의도들을 바라보는 것이지만은, 승선을 하고 나면은 깐깐하고 엄격하고, 원리 원칙적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사색과 관념보다는 질서와 매뉴얼을 중요시해야 해요. 그래서 지금의 가치관들이 많이 위험하다고 느껴서, 그래서 지금의 것들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에요.


사랑한 것들, 저는 저의 직업을 사랑해요. 원리원칙적이고, 엄격하고, 깐깐한 것들에서 그런 질서 정연함에서 편안함을 느껴요. 그럼에도 극단적으로 다른 측면들을 좋아해요. 포괄적이고, 관대하고, 너그럽고, 유연한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느껴요.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느껴요.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하는 저 스스로가 가장 싫어요. 한쪽으로만 쭉 가야지만은, 어느 한 귀도까지의 성공을 할 수 있다고 세속적인 자아가 말하지만은요. 끝내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에요. 세속적인 이 자아 녀석이 얼마나 더 떠들고, 글을 쓰지 말라고 하더라도, 저는 계속 쓸 거예요. 당장은 그 녀석의 말을 들어야 하겠지만은요.


제 글에서, 특히 <선명해진 건 사랑이다>에서 만큼은, 이 녀석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진 않아요. 더 이상 더럽혀지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자아도 사랑해요. 저의 직업도 너무나 애틋하고, 사랑해서, 꼭 한 번은 이야기하려고 해요.


제가 해기사를 하려고 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게요.

저는 요트 면허를 취득하려 아버지와 강연을 들었어요. 아버지는 자수성가를 하신 사업가예요. 그 때문에, 저의 유년시절에 아버지의 자취를 많이 보지 못했어요. 짧게 만나기에 애틋하고 보고 싶지만은, 볼 수 없는 뭔가 방해가 될 거 같은 사람이었어요. 저에게도 항상 엄격하고, 많은 걸 바라시지만은, 사랑을 주지는 않았다고 생각했었어요.


제가 바라보며 큰 뒷모습이 바로 아버지의 모습이에요. 깐깐함과 엄격함이, 미덕이라고 느껴왔어요. 모든 인간관계에서 득을 따져야만 하고,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었어요. 저도 무언가에 엄격하고, 깐깐하게 크고 싶었어요. 회계사, 세무사, 혹은 건축가 정도가 되고 싶었어요. 저의 시야가 그 정도였거든요.


그러다가 요트면허를 처음 아버지와 취득하려 했어요. 묵묵한 아버지는 또 엄격하게 바라보았지만, 그럼에도 같이 있는 시간이 좋았어요. 그 요트 강사는 저에게 해기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알려주셨어요. 아주 상세히 말이죠. 해운업계가 세계에서 크고 역사가 길다는 것을 알려주고, 엄격한 그 생활 속에서 사소한 작은 것이 사고로 이어져서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하셨어요.


저는 엄격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전문적인 시각을 키우고, 깐깐해도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적어도 지금은, 너그럽고, 관대하고, 모든 것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싶어요. 그래서 미치도록 사랑하는 이 직업이요. 지금은 좀 미워요.

드디어, 기억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건만 세습적으로 살아야 하다니...


남은 시간 만이라도 사랑하는 것들을, 다시 돌아와서 볼 수 있도록, 그 향기를 기억할 수 있도록, 남겨볼래요. 품어 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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