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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Jul 26. 2023

집안일은 하찮지 않다.

앨빈토플러의 <부의 미래>에서 배운 것


  어린아이 배변 훈련 시키고, 식구들 밥 해서 먹이고, 설거지하고,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다 된 빨래를 빼서 말리고 개켜서 옷장에 다시 넣고, 갖가지 물건을 정리․정돈하고 청소하는 것들, 이런 걸 우리는 집안일이라 한다. 보통 집안일은 하찮은 일로 치부된다. 가정주부(남자든 여자든) 입장에서 들으면 열 불날만하다.


  그런데 이것을 ‘보이지 않는 부’라는 멋들어진 이름으로 표현해 준 사람이 있다.


  앨빈토플러의 <부의 미래>라는 책은 1990년대 전후에 쓴 미래를 전망하는 책이다. 지금부터 약 30여 년 전이다. 변화되는 미래를 예측하고 미리 준비하면 부(富)를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보면 이런 것들이다.


  개인화된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현대 가족의 단위는 핵가족이다.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3~4인 가족 형태이다. 이런 가정을 이루기 위해 20~30대 남녀는 때가 되면 결혼해야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하고 독립해서 살아가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은 ‘미운 우리 새끼’라고 표현되고, 이혼을 하거나 동거만 하고 있거나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고 있으면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한다.


  현시대에는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독신, 이혼, 재혼, 무자녀 가정이 매우 많다. 심지어 이런 형태의 삶이 당연시되고 있다. 자녀들이 가정을 이루는 것을 강요하던 60~70대들조차도 황혼이혼, 졸혼이라는 형태로 자유로운 노년을 꿈꾸고, 실행한다. 앨빈토플러는 이것이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화 사회(제3의 물결)로 넘어가면서 생기게 될 중요한 변화라고 예측했다.




  사회가 개인화가 되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변화가 있다고 했다. 앞서 ‘보이지 않는 부’로 구분했던 것들이 혼자서는 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에 대신해 줄 수 있는 서비스의 수요가 폭발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집안일이라고는 모르고 살던 사람들에게는 더할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집에서 밥 해 먹고 식재료를 보관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러니 배달을 시키거나, 밀키트를 사다가 간단히 조리해서 먹고 끝낸다. 아니면 ‘혼밥’할 수 있는 식당을 찾는다. 4인 가족이 있을 때는 아내가, 엄마가 나의 빨래를 다 해줬고 내 방 청소도 해줬다.


  그런데 혼자 살면 쌓여가는 빨래는 보고 있을 수밖에 없고, 한계에 다다르면 한 번에 빨래방에 가져가서 건조까지 해온다. 방 청소나 정리․정돈도 전문가들에게 주․월 단위로 돈을 주고 맡긴다.


  맞벌이 부부는 갓난아이를 직장에 데려갈 수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으니 육아휴직이 끝나면 어린이집에 돌봄으로 맡기거나, 내 월급만큼을 주고 아이 돌봐 줄 사람을 구해야 한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부부 중 한 명이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 가정주부가 하는 하찮아 보이던 일에 돈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집안일은 절대 하찮은 일이 아니게 된다. 개인화된 사회의 서비스 수요이고, ‘보이지 않는 부’가 ‘보이는 부’로 변화되는 것이다. 집안일에 돈을 쓰고, 하찮은 집안일로 돈을 버는 세상이다.




  보이지 않는 부가 보이는 부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기존에 보이지 않는 부로 분류되었던 것들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기계적으로 일정한 공정을 만들어 놓고 표준화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설령 표준화 더라도 인건비, 재료비 등 비용이 높아져서 사업자들은 이익을 남기기 어렵다. 그래서 공정의 상당 부분을 소비자에게 떠넘긴다. 이 책에서는 ‘프로슈머’라는 용어로 정의했다. ‘생산에 참여하는 소비자’라는 뜻이다.


  카페나 식당에 가면 예전에는 카운터에 가서 주문과 결제를 하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러면 주문받은 제품을 만들어서 가져다줬다. 그런데 지금은 손님이 키오스크라는 기계에서 직접 주문을 입력하고 결재까지 한다. 그리고 제품이 나오면 가져가라고 방송이 나오거나 목소리로 부른다. 다 먹은 그릇은 반납하는 곳으로 소비자가 가져다 놓는다. 주문, 배달, 용기 반납 등 생산자가 다 해줬던 것을 소비자가 하고 있다. 그러나 가격은 같다. 앨빈토플러는 조금만 더 있으면 소비자가 가격을 지불하고 생산까지 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책장에 꽂혀만 있던 책을 꺼내서 무심결에 한번 떠들어 봤다가 소름 돋는 경험을 했다. 이 책에서 예측한 미래의 모습이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비즈니스 모임을 하는 사업가들과 이 책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 디자인을 하는 대표님은 자기 사업 모델이 최근에 AI로 대체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고 이야기했다. 인테리어업 대표님은 이 책의 내용을 보고 사업체 구조 자체를 재편성했다고도 했다. 또 다른 한 은 내가 그토록 찾았던 고민의 이유를 이 책에서 찾았다고도 했다. 30년 전에 내놓은 통찰이 지금에 우리를 깨우치고 있다.


  앨빈토플러의 통찰은 정말 대단하고, 이것을 잘 이해할 때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내 삶의 방향도 여기서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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