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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Jul 27. 2023

퇴사하지 말았어야 했다.

외로움


  아내와 싸웠다. 돈 때문이다. 6개월째 놀고 있으니 당연한 듯하지만 서운함, 아니 화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퇴사할 당시만 해도 분명히 괜찮다고 했었다. 근데 갑자기 그런다.




  아내는 나와 결혼하면서 육아에 전념하려고 일을 그만뒀다. 그러다가 2년 전쯤 아이들이 사리분별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프리랜서 심리상담사, 파트타임으로 학교 방역요원 등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재정비를 위해 여성 새로 일하기 센터에서 지원금을 받아서 컴퓨터활용능력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그날도 교육받고 2시쯤에 집에 왔는데, 내가 소파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게다가 눈빛은 노숙자나 부랑자를 보는듯했다. 퇴사 후 집에서 놀고만 있더라도 그 눈빛을 모를 리 없다.


  "왜 그렇게 봐"

  "그냥......"


  아내는 더 이상 말도 하기 싫다는 듯이 밀린 설거지에 몰두했다.


  "내가 한심해 보여?"

  "......"


  나도 화가 나서 쏘아붙였는데 아내는 아무 대답이 없다.


  "아까까지 책 보다가 잠깐 누워있었는데, 왜 그런 눈으로 보냐고. 기분 나쁘게."


  아내는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들이 집에 왔다.


  "엄마는?"


  평소 같았으면 엄마가 현관 앞까지 와서 반겨줬어야 했다. 그런데 아빠만 거실에 앉아 있으니 이상한 기운을 느꼈을 것이다.


  "안방에 있어. 가봐."


  내비게이션 안내음성인양 내 말을 들은 아이들은 둘 다 가방을 벗자마자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서는 엄마에게 애교 부리는 아이들과 애써 침착한 척 목을 가다듬고 아이들에게 다음 행동지침을 내리는 아내의 음성이 들렸다. 왠지 내가 있으면 안 될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난 공부방 겸 서재방으로 쓰고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아내는 아이들의 저녁을 차려줬다. 붙임성 좋고 해맑은 성격인 첫째 아이를 시켜서 아빠 밥 언제 먹을 건지 물어보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밥 언제 먹을 거야?"

  "아빤 배 불러서 저녁 안 먹을래."

  

  말을 듣자마자 방 문을 닫고 나가면서 제 엄마한테 보고한다.


  "엄마, 아빠 밥 안 먹는데."


  이 보고하는 목소리가 영화 속 대사 같이 들렸다. 나는 손에 들려있는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 해방일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의 목소리보다 책 속의 사투리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나도 구례에 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밤 열 시쯤 됐을 때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내도 누워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숨이 찼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팔다리가 저려왔다.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났다.


  아내가 내 팔다리를 주무르면서 말했다.


  "괜찮아? 약 먹었어? 갑자기 왜 그래?"


  "내가 그렇게 한심해 보이던?"


  걱정스러워하면서 말했다.


  "자기가 최근에 살도 좀 쪘잖아. 갑자기 살찐 사람이 낮에 소파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나 한심해 보였어. 쉰 지도 6개월 정도 됐으니까 이제 뭐라도 할 준비를 좀 할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그렇게 퍼져있는 모습을 보니까......"


  난 몸을 떨면서도 이번에는 말을 해야겠다 싶었다.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러고 있니? 생활비도 이제 다 떨어져 가는데. 근데 어떡해. 마음속으로는 많이 정리돼 긴 해도 현실에서 일은 어떻게 해야 될지, 나도 아직 모르겠단 말이야. 나 퇴사할 때는 돈 걱정 하지 말고 쉬라며? 아파트 담보대출 좀 천천히 갚고 예비로 돈 좀 두자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 갚아버리라며. 1년도 아니고 이제 5개월, 6개월 돼가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 돼? 그동안 서두르다가 실수한 거 다 봤으면서 그렇게 닦달하고 싶니? 내가 무슨 돈 벌어오는 기계야? 꿈이, 직업이, 하고 싶은 일이, 뚝딱하면 나오니?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나 스스로가 지금 얼마나 답답해하고 있는지 몰라서 그래? 왜 이 사람 저 사람 다 나만 갖고 닦달하는 거야? 난 기계니? 니들 장난감이야?"


  말하는 내내 눈물만 흘렀다. 아내는 아무 말 없었다.


  "괜히 그만뒀네. 공황장애건 뭐건 그냥 계속 일을 했어야 했는데. 응급실에 가든 말든 회사를 다녔어야 했어."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동시에 난 세상에 홀로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30분 정도 지났을 때 몸 상태는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그대로였다. 난 등을 돌리고 누워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외로웠구나. 미안해."


  아내가 뒤에서 나를 안았다. 화나고 서럽다고 느꼈던 것은 돈 때문이 아니었다. 돈은 편의점 알바를 하든 배달을 하든 공장 노동자로 일하든 보험 영업을 다시 하러 가든, 뭘 해서든 벌 수 있다. 문제는 외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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