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생활 속 기다리는 손님

by 오월

일을 하는 입장에서(주인 아닌 입장) 쏟아지는 손님들이 썩 반갑지는 않다.

어쩔 수 없다. 주인에게는 손님들이 방문할 때마다 매출이 올라가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적당히 좀 와라!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문이 기다려지는 손님이 있다.


대형약국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기다리는 손님이 있지 않았다.

대형병원 특성상, 아픔의 경중이 다양했고 그 아픔을 직원들에게 쏟아내시는 분들이 많았다.

당장 내 몸이 아프니 누군가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순간 불합리하다 느끼는 것들에 대해 버럭 화를 내시고, 연령대가 높다 보니 반말도 스스럼없이 튀어나왔다. 단골손님들도 자주 방문해서 익숙하다 뿐이지, 친하게 지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동네약국, 특히 소아과 약국이라 귀여운 꼬마 손님들이 자주 방문했다.

사실 나는 어린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의사소통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아이들 특유의 높은 음색으로 부모님께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 떼쓰는 소리는 두통을 동반했다. 부모가 아이들을 잘 케어해 준다면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부모들도 있어, 나는 내 업무와 동시에 아이들이 이것저것 만지고 돌아다니며 위험하지 않을지도 지켜봐야 했다.

사실 그 아이도 수많은 꼬마 손님들 중 한 명이었다.


"떤댕님, 안녕하세여"

접수대 위로 빼꼼히 올라온 조그마한 손. 고개를 내려보니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처방전을 낑낑대며 접수대에 올려두었다.

한 번도 어린 꼬마손님이 인사를 건넨 적이 없기에, 특유의 혀 짧은 목소리의 인사가 기껍게 느껴졌다.

아이는 시끄럽게 떠들지도, 우다다다 매장을 뛰어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어머니의 관심과 보호 아래서 재잘재잘 대화를 나누거나, 조용히 매장을 구경할 뿐이었다.

어머니께서도 언제나 직원들을 대할 때 조곤조곤, 항상 수고하신다며 좋은 인사만 건네주셨다.

아. 아이가 어머니 성향을 꼭 빼닮았나 보다.

혀 짧은 인사는 내게 와 박혔고, 어느덧 지친 일상 속에서 기다리는 꼬마 손님이 되었다.


지금쯤 그 아이도 초등학생, 벌써 고학년쯤은 되었을 테지?

최근 학생과 학부모, 교사 사이의 좋지 않은 내용의 뉴스를 접하다 보면 욕이 턱 끝까지 치민다. 언제부터 내 새끼만 소중한 날이 왔을까? 한편으로는 그때 그 아이가 떠오른다. 아직까지 이름도 잊히지 않는다.

서로를 위해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별거 아닌 듯하면서 별거였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


다정함은 강하다.

그 다정함을 닮은 꼬마 손님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다정함을 베풀 줄 알겠지.

그렇게 널리 다정함이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나도, 누군가에게 다정함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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