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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할아버지, 우는 건 봐주세요

by 오월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동요이다.

부모님 말씀 듣지 않고 울고 떼쓰는 아이에게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지 않으신다는 내용의 동요이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이 노래는 그야말로 부모님들에게 아주 좋은 패가 되어준다. 겨울에는 모든 아이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다. 결국 이 동요도 크고 나서 보니, 아이들이 떼쓰지 않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게 하기 위한 전략적인 노래였다.


이 노래 때문일까? 사회적 분위기 때문일까?

우는 것은 마치 잘못된 행동같이 느껴진다. 물론 우는 행위가 긍정적일 때보다 부정적인 상황에서 더 많이 쓰이긴 하지만 말이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 나약한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 같고, 괜히 할 말 없으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무기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릴 땐 감수성이 풍부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며 참 많이도 울었다. 애니메이션뿐이었겠는가, 각종 매체에서 감동적인 내용을 접하면 눈물샘은 개방이 되었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어렸을 적 우리 집에서 나와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던 친구가 갑자기 내가 눈물을 훌쩍이길래 놀라 엄마에게 달려가 내가 운다고 이야기했었다고 한다. 왜 우냐는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애니메이션 속 인물에 감정이입해서 "00이 불쌍해" 하면서 울었더란다. 아마 주인공이 아닌 다른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했었나 보다.


어린 시절에는 감정 표현에 솔직했다.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춘기를 겪는 중학교 시절 이후 우는 행위는 얕잡아 보이는 행동이라는 인식이 점차 굳어졌다. 툭하면 우는 아이들을 울보라 놀리던 초등학생 시절을 거쳐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혐오에 가까운 반응을 자아냈다.

"쟤 왜 울어?" 누군가 울기라도 하면 주변의 반응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마치 우는 아이의 잘못이 제일인 것처럼.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누군가 울고 있을 때 안쓰러워하거나 그 이유를 궁금해하기보단 짜증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사람이 우는 이유는 생각해 보면 다양하다.

슬플 때, 화가 날 때, 억울할 때. 적다 보니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감동받아서, 기뻐서 흘리는 눈물도 분명 존재한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 사이에서 애정이 담긴 감정에서도 눈물은 흐를 수 있다.


성인이 되고서 눈물에 대한 생각이 또 한 번 달라졌다.

온갖 사람을 겪고, 부조리함에, 현실에 익숙해졌다. 우는 것도 사치였다. 울어서 나의 에너지를 소모시킬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다 울었니? 그러면 이제 일 하자^^ 라는 밈이 마냥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감정을 표현하고 살아야 한다. 울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말은 웃긴 이야기가 아니라 씁쓸한 현실이다. 언젠가 강둑이 터져버려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기 전에, 그전에 나 자신에게만큼은 솔직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성인이 된 지금 어린아이들의 솔직한 감정표현은 한편으로 부러운 것이다. 성장할수록 눈물샘은 메마른다. 어린 시절만이라도 펑펑 울게 놔둬도 괜찮지 않을까? 산타할아버지는 결국 아이들을 사랑하니, 아이들에게 머리맡에 선물을 두고 가시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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