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굴뚝 없는 산속 집에 찾아온 산타

by 오월

어릴 적 크리스마스가 설렜던 이유가 있다. 사실 모든 것들이 낭만적이었지만 어린아이들이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선물이다.

내가 원하는 선물을 받고 싶어서 울고 싶어도 12월 한 달만큼은 착한 아이로 지낸다.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평소에는 하지 않던 집안일도 어떻게든 보탬이 되려 애쓴다. 크리스마스는 선물을 받기에 설레는 기념일이다.


가정형편이 썩 좋지 않았던 나는 내가 원하는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딱히 없다. 어린이날 친구들이 비싼 장난감을 받았다, 어디 놀러 갔다 왔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좋겠다는 반응만 보였을 뿐이다. 내 기억 속 장난감들의 대부분은 먼 친척이 가지고 놀다가 이제 애정이 식어버린 장난감들을 받았다. 그마저도 장난감은 사람을 설레게 했다. 길쭉한 비율을 자랑하는 미미인형, 지금 보면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건전지 잡아먹는 소리 나는 장난감, 부피가 큰 봉제인형. 우리 집에선 엄마가 사줄 리 없는 장난감 한 보따리를 받고 좋아했었다.


엄마는 장난감을 잘 사주지 않았다. 나름대로 엄마의 철학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이날이면 장난감 대신 동네 서점에 데리고 가서 맘껏 책을 읽고 원하는 책을 고르게 했다. 무서운 게 딱 좋아! 같은 공포와 재미만을 추구하는 만화책은 구매할 수 없었다. 어렸을 당시엔 그게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남들처럼 비싼 장난감 선물, 놀러 가자고 떼를 쓴 것도 아니었지만 서점에서조차 내가 원하는 만화책을 살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서운하게 했다.

나에게 선물이란 그런 기억뿐이다. 그래도 무언가 하나 남는 게 있어야 하는 것. 그저 재미만을 추구하는 물건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 내게 크리스마스날 아침, 놀라운 선물이 머리맡에 놓여있었다.

왠지 모를 커다란 부피에 예쁜 포장지로 잘 싸인 무언가. 난생처음 선물같이 생긴 선물에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처음이 아니었겠지만 내 기억에 남는 첫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포장지를 뜯어냈다. 분홍색 벽과 노랑 지붕으로 이루어진 집 모양의 소꿉놀이 세트였다. 그런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본 적이 없어 설렜다. 씽크대에 물을 받아두고 펌프를 누르면 진짜 물이 나왔다. 당시 내 기준 신문물같이 여겨져 신나게 몇 번이고 펌프를 눌러댔다.

접시와 찻잔을 세팅하고 나머지 접시에는 햄버거 세트를 만들어 올려두었다. 장난감다운 장난감.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간 장난감이 아닌, 나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장난감이었다.


그 장난감 세트를 몇 년이고 가지고 놀았는지 모른다.

마당 딸린 주택에 살았던 나는 봄이 되면 마당에 돗자리를 깔아 두고 어김없이 소꿉놀이 세트를 꺼내왔다. 가짜 음식이었지만 살랑이는 봄바람, 벚꽃 구경을 집에서 하니 정말 피크닉이라도 나온 것만 같았다.

물론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다고 하지만, 나는 선물 받은 소꿉놀이 세트로 인해 산타할아버지가 분명 계실 거라 믿었다. 엄마가 사줄 만한 선물이 아니었으니까.


"엄마, 그 소꿉놀이 세트 진짜 누가 산 거야? 어릴 때 엄마는 그런 걸 사줄 사람이 아니었잖아."

"크리스마스 선물을 그럼 엄마가 준비하지, 누가 준비하냐?"

그래.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 왜 엄마가 사준 거라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렘과 추억이라면 역시 소꿉놀이 세트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keyword
이전 12화산타할아버지, 우는 건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