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컴퓨터 수업시간에 설레는 순간이 있었다.
먼저는 자유시간이었고, 둘째는 겨울에 편지지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예쁜 이미지를 찾고 찾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겨울 느낌이 나는 애니메이션 일러스트들은 내 눈을 황홀하게 했다. 순정만화 특유의 큼지막한 눈망울과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완벽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특히나 그러했다.
현실에서는 나의 키를 훌쩍 넘긴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 수 없었고 트리 밑에 한가득 쌓여있는 선물 보따리들을 만날 수 없었다. 알록달록한 색상의 애니메이션 이미지들은 고르는 그 순간을 행복하게 했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도 좋아했다. 그야말로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담긴 행위였다.
엄마는 모든 기록들을 남겨두는 편이었다. 특히 초등학생 시절부터 나의 생활기록부와 받았던 상장들은 이미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클리어 파일에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다. 간혹 심심할 때면 엄마와 함께 그것들을 살펴본다. 동생의 유치원 시절 사진앨범부터 나의 모든 기록물을 함께 살펴본다. 동생과 나는 성향이 비슷한 듯 다르다. 이분법적으로 나눠보자면 나는 전형적 문과형 인간이고, 동생은 이과형 인간이다.
그래서인지 동생은 나의 글쓰기 상장을 보면서, 확실히 우리의 성향이 다르다며 신기해한다.
글쓰기 종류는 다양하다. 그중에서 나는 편지 쓰기를 특히나 좋아했다.
아마 어린 마음에 '상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성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편지 쓰기만큼 거짓 없이 적어내는 글이기에 좋아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브런치에 글을 적는 것, 블로그에 적어내는 것. 모든 글쓰기는 불특정 다수의 독자가 존재한다. 물론 공개여부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누군가가 나의 글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편지만큼은 읽는 대상이 명확하다.
어버이날 부모님께 감사함을 담아 쓰는 편지, 친구 생일날 축하하는 맘을 담은 편지, 연인들끼리의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애틋한 편지.
편지는 명확한 대상이 있다. 그렇기에 더욱 진솔하다. 작성하는 이의 날것 그 자체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렇기에 거칠고 투박하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따스하게 만든다.
감정에 솔직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된 지금은 솔직하지 못하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자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심지어 소중한 이에게도 어린 시절처럼 솔직한 감정을 담아 편지를 쓰지는 못한다.
크리스마스 시즌 매대에 놓인 온갖 엽서들을 보며 이번엔 편지를 써볼까? 하며 손에 엽서를 들어 올렸다가 이내 뒷면의 가격표를 보고 손에서 내려놓는다. 조그마한 엽서 하나가 왜 그리 비싼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내가 내려놓은 것은 가격 때문이 아니었다. 솔직한 맘을 전하고자 했던 용기였다.
올 겨울엔, 투박하지만 솔직한 마음을 몇 자 적어 내려가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