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신앙인은 아니지만 신앙생활을 꽤 오랫동안 해왔다.
소심한 내가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기간은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스마스 기간이었다.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시기가 되면 분주해진다. 성가대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거룩하게 부르기도 했으며 어린아이, 성인 할 것 없이 열심히 준비한 공연을 서로 나누었다.
함께 모여 공연을 즐기고 행복하게 웃는 그 시간은 좋아했지만 소심한 나는 공연을 준비하는 기간이 괴롭기 짝이 없었다.
늦은 시간까지 교회에 남아 크리스마스 캐롤을 정한다. 어릴 적이라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크리스마스 캐롤에 맞춰 벨을 울려 화음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직접 목소리를 내어 화음을 맞춰나가기도 했다. 항상 점심 무렵 집에 도착했었는데 크리스마스 공연 준비를 하다 보면 해가 뉘엿뉘엿해질 무렵 집에 도착했다. 항상 오고 갔던 길인데 해질 무렵 교회에서 집으로 가던 길은 기분이 참 이상해졌다. 빨리 크리스마스가 되어 이상한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당시에는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만, 지금 생각하기로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꼈던 것 같다. 엄마 없이 혼자 친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뒤섞여 오는 그 길이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계절은 정직했다. 봄엔 쌀쌀하지만 예쁜 꽃을 틔워내고, 여름은 더웠지만 지금처럼 습하지는 않았다. 가을은 점차 선선해져서 소풍 가기 좋은 날씨를 보여줬고 겨울엔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내렸다. 자고 일어나면 언제나 눈은 꽤 많이 쌓여있어 정강이, 무릎까지 발이 푹푹 빠졌다. 나와 동생은 언제나 아침이면 깔끔히 치워져 있는 길을 지나 학교로 향했다.
코끝은 겨울바람과 바닷바람의 하모니로 새빨갛게 얼어붙었고 입에서는 새하얀 입김을 뽑아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시기에는 대개 눈이 내렸다. 설렘도 함께였다.
보통 크리스마스 하루 전날 밤 공연을 했던 것 같은데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것들을 엄마에게 선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과 교회에서 받게 될 선물도 기대가 되었다.
밤에는 멀리 나갈 일 없던 나는 늦은 밤 교회로 이동하는 그 길이 뭔가 어색하지만 설렜다. 드디어 끝이라는 생각과 함께 엄마에게 내가 준비한 것들을 잘 뽐내리라는 마음. 내일은 크리스마스라 선물이 머리맡에 준비되어 있겠지 하는 기대감.
여러 설렘들로 범벅이 된 나의 머릿속엔 즐거움만이 가득했다.
공연은 어떻게 진행했는지 기억조차 남지 않는다. 그저 그때의 사진만 남아있을 뿐이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건, 깜깜한 밤하늘에서 내리던 함박눈. 그리고 그날 울려 퍼졌던 캐롤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