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참 역설적인 계절이다.
분명 차디찬 겨울바람에 추운데 한편으로는 포근하다. 하늘에서 내리는 차가운 눈은 짐덩이처럼 때로는 포근한 깃털처럼 느낄 때도 있으며 모두에게 평온한 하루를 선사할 것 같지만 지독하게도 시린 하루를 선사하기도 한다.
어쩌면 날씨의 문제가 아닌 받아들이는 자의 문제일 것이다.
겨울은 슬프게도 빈부격차가 여실히 드러난다.
추우면 벌레가 나오지 않을 법도 한데 추위를 피해 집안으로 들어오는 벌레들과 아침마다 실랑이를 벌여야 했으며 피부는 찬 바람에 부루 터서 붉어져 있었다. 내복은 정말이지 입기 싫었다. 추위 때문에 입어야만 했지만 짧아진 옷소매 밖으로 삐쭉 나온 분홍색 내복을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모두에게 겨울이 반가울 리는 없었다.
나는 마냥 어렸기에 거슬리는 몇 가지만 피하면 그럭저럭 겨울을 버틸 수 있었지만 엄마에게는 현실이었다.
내가 커다란 벌레를 마주해 징그럽다고 소리를 질러대면 벌레를 잡아주는 건 엄마였고, 칼바람에 부루툰
뺨에 열심히 로션을 듬뿍 발라주는 것도 엄마의 몫이었다.
내복이 민망해 입기 싫다며 투정 부려도 엄마는 혹여 감기 걸릴까 꾸역꾸역 내복과 얇은 옷들을 껴입혔다.
눈이 참 많이 내리면 엄마는 집 앞에 쌓인 눈을 쓸어냈다. 혹여 학교 가는 내리막길 골목에 우리가 넘어질까 봐, 할머니가 넘어질까 봐, 동네 어르신들이 많이 지나는 길이라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집 앞 골목 눈을 쓸어내는 것은 엄마의 몫이었다.
사람들에게 엄마는 착하고 불쌍한 애엄마였다.
철없던 그 시절, 현실 따위는 내가 알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남들보다 돈이 없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았지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인지하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크리스마스날 산타할아버지 대신 선물을 놔두는 것 자체가 엄마에게는 부담이었다는 것을.
나에게는 포근했던 겨울의 추억이
나와 가까운 누군가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지독히 시린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