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려치듯 어느 날 갑자기, 계획 없이 퇴사를 했지만,
나도 나름의 퇴사 사유가 있었다.
계획이 없다고 해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충동적인 퇴사는 절대 아니었고 많은 고민 끝에 결정한 일이었다. 내가 봐도 조금 구구절절하긴 하지만 이건 변명이 아니다. (진짜다.) 다음은 내가 퇴사를 결심했던 결정적인 이유 세 가지였다.
첫째, 나는 내 일을 좋아하지만, 회사라는 조직과는 맞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가 맞지 않는다고 하면 '회사가 적성에 맞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라고 반문할 것이다. 맞다, 회사가 체질인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나는 7년이라는 기간동안 다양한 회사들을 경험했고 오랜 고민 끝에 나는 회사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회사라는 조직은 일을 하기 위해 모인 집단이지만 일만 하지는 않는다. 팀워킹을 하면서 서로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도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친분도 쌓고 인맥도 넓혀야 하고, 그래야 회사가 말하는 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소프트 스킬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나는 회사에서 '오직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 회사 안에서 친한 동료들도 있었고 동료들과의 교류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은 공적인 것, 동료와의 교류는 공과 사의 그 어디쯤 이라고 생각하는 어쩌면 조금 고지식한 직장인이었다.
7년의 경력을 쌓으며 이직도 꽤 많이 한 편이었는데, 그 동안의 이직 사유, 이직 시 회사를 택한 이유도 전부 돈이나 보상, 사람보다는 '내가 이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였다.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회사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최대한 많이 하고 싶었다. 결과가 숫자로 나오는 내 일을 좋아했고, 조금씩 결과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또 데이터로 직접 증명해 낼 수 있는 곳을 찾아 이직을 했다.
정리해 보면 나에게 회사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곳',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회사가 이런 존재이고, 내가 회사에 밖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굳이 회사에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둘째, 내 스킬이 회사 밖에서도 돈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회사를 다니며 연봉을 높여왔지만, 연봉 상승은 너무 더디게만 느껴졌다. 콘텐츠 마케터로 마케팅 대행사부터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회사를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SNS 운영, 퍼포먼스 마케팅, 콘텐츠 제작까지, 여러 업무 경험들을 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스킬들을 쌓았지만 내가 가진 스킬들이 시장에 나갔을 때 정말 돈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이것을 직접 테스트 해보고 싶었다.
스킬을 테스트 해보겠다고 하니, 지인들은 회사를 다니며 부업으로 이를 테스트해 보라고 말했다. 사실은 나도 회사를 다니며 이런 저런 부업들을 벌려 놓았었다. SNS로 수익화에도 도전해 보았고, 콘텐츠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도 찾아보았다.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그러나 실패할 때마다 궁금했다. 나는 과연 이 일에 얼마만큼의 리소스를 투자해보고 실패라고 하는 걸까? 그래서 자꾸만 미련이 남았다. 조금만 더 해봤으면 수익이 나지 않았을까.
부업이나 사이드 프로젝트로 여러가지 일들을 벌려두고 또 다시 회사 일에 허덕이다가 놓아 버리고 미련이 남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어떤 일에 대한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할 만큼 해봤다'라는 생각이 들만큼 끝까지 가봐야 포기도 할 수 있다. 퇴사는 일종의 배수의 진이었다. 끝까지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포기가 될 것 같았다.
셋째, 그래도 진짜진짜 최종, 찐으로 실패할 경우, 회사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지금이 최적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30대 초(중...)반이다. 30대 초반이 되니 20대 초반에는 학교를 다니고 20대 중후반에는 함께 취업을 향해 달렸던 친구들의 삶의 궤적이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주변 친구들 중 누군가는 성실하게 장기 근속을 하며 회사를 다녔고, 누군가는 퇴사를 해서 자기 사업을 하고, 누군가는 결혼을 해서 일을 그만두기도 했다.
예전처럼 20~30년 한 회사에 근속하거나 10년 이상 같은 사업 아이템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 하나 먹여 살리기 위해 수많은 시도와 변화를 겪어야만 한다. 앞으로 수십년을 더 살면서 수많은 직업의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30대 초반에 퇴사라는 도전은 일종의 예방주사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30대 초반에 회사만이 길은 아닌 것 같았고, 내 스킬을 테스트해보고 진짜 진짜 최종으로 '아, 내 스킬로는 회사 밖에서 돈을 못 벌겠구나' 생각이 들면 30대 중후반이라면 그래도 회사에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도 30대 후반에 육아나 다른 이유로 회사를 잠시 떠났다가 돌아오신 분들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겁은 더 많아진다. 더 겁이 나기 전에, 한 번은 도전해 보고 싶었고,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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