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빈 Dec 05. 2022

퇴사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퇴사를 고민하면서 퇴사해야만 하는 근거도 하나씩 만들어 갔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도 커져갔다. 퇴사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 실감났다. 우선은 먹고 사는 게 걱정이었다. 대학 졸업 이후 고시원에 오래 살았고 이리저리 회사를 옮겨다니며 매우 타이트한 긴축재정을 경험해 보기도 했다. 무덤덤한 성격으로 고시원에서 살았던 시기가 그리 힘들지는 않았고 돈은 없었지만 나름 행복한 시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퇴사를 결심하면서 예전처럼 좁은 고시원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문득 들기도 했다.


회사 안은 전쟁터지? 회사 밖은 지옥이야.

드라마 <미생> 캡쳐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드라마 <미생>의 명대사 중 하나다. 극 중 오상식 차장이 오랜만에 퇴사 후 창업한 선배를 만나 술잔을 기울이다 선배가 하는 말이다. 힘들어도 회사 안에서 버텼어야 했나, 선배는 후회하며 오 차장에게 힘들어도 그만두지 말라고 말한다. 50대 가장의 이 말이 갑자기 나의 현실처럼 다가왔다.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이 갑자기 사라지고, 온전히 내가 나를 먹여 살려야 하는 것이다. 회사라는 배경도 빽도 없는 내가 과연 나를 먹여 살리는 게 가능할까. 회사 생활이 그렇게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이 보다 훨씬 더 힘든 일들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나는 내 나름대로 미래를 구체화해보는 방식을 택했다.


STEP 1. 나의 관심사를 적어 보자.

우선 내가 관심 있는 키워드에 대해 몇 가지 적어 보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니, 영화, 여행, 맛집, 주식 등등 다양한 키워드들이 나왔다. 관심사 부자였던 나는 몇 가지를 적어 놓고 고민을 시작했다. 관심은 있었지만 일해 본 적 없었던 이런 키워드들로 돈을 벌 수 있을까?


STEP 2. 좋아하는 것만으로 조금 부족하니 내가 잘하는 것과 장점도 적어 보자.

좋아하는 것만 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겼으니 자신감도 조금 채워 보도록 한다. 우선 콘텐츠 마케터로서 기획력과 분석력이라는 강력한 무기는 어떤 사업을 하든 도움이 되는 요소였다. 정신적으로는 긍정적이고 위기에도 차분한 멘탈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저것 경험하는 것에 두려움이 적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이제 자신감이 +1 회복되었다.


STEP 3.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연결 시켜 본다.

이제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연결시켜 노션에 끄적여 보았다. 확신이 생겼고 하나하나 프로젝트들을 구체화 해보았다. 사업 계획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끼적거림이었지만 퇴사하고 나서 뭘 해서 먹고 살 수 있을지 노션에 적어 보니, 그나마 안정이 되었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을 연결해 보니, 회사 안에선 하고 싶은 일이 없었지만 회사 밖에선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 SNS와 모임 운영을 통해 수익을 내보고 싶었고, 쿠팡이나 스마트스토어, 아마존 등에 셀러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팔아 보고 싶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조금 설레기도 했다.


STEP 4. 자, 그래서 버틸 수 있는 돈이 얼마나 있지?

퇴사 후 불안감 중 가장 큰 요인은 당장에 먹고 살 걱정이다. 좋아하고 잘 하는 걸로 돈을 벌 수 있다고 해도 지금 당장 월급 만큼의 수익이 날지 알 수 없다. 얼마 되지 않는 작고 귀여운 나의 재산과 월 고정비, 최저 생활비를 계산해 보니 적어도 몇 개월은 한 푼도 벌지 못해도 버틸 수 있었다.

모아 둔 돈을 까먹는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큰 두려움이겠지만 나에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삶에 있어 몇 개월 동안 돈과 상관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것, 그 자체로 값진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이렇게 나는 불안감을 조금은 내려놓고 퇴사를 선언했다.

산다는 것은 점점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퇴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너무 뜬금 없는 삶에 대한 성찰이지만 진짜 그렇다.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발 아래 세상을 넓혀 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성큼성큼 뛰어가기도 한다. 나는 그 중간 어디쯤인 것 같다. 겁이 많아 소심하게 한 발씩 내딛다가도, 갑자기 냅다 멀리 뛰기를 해버리기도 한다.


냅다 멀리 뛰기를 해서 퇴사까지 가는 길은 용기가 필요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많이! 누구나 퇴사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은 있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굶주림(?)에 대한 두려움보다 설렘과 기대감이 앞선다면 그 때가 바로 퇴사할 수 있는 때다. 회사 밖이 지옥일지, 또 다른 세상일지 일단은 부딪혀 보기로 했다.




계획은 없지만 퇴사합니다 이전 시리즈 다시보기


1. 딱히 계획은 없는데, 퇴사는 하고 싶습니다.


2. 퇴사, 저도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전 02화 퇴사, 저도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