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선언을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이미 결정한 일이었고 이제 헤쳐 나갈 일만 남았던 거다. 마음이 편해지자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쏟아졌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퇴사한다고? 부럽다..
언젠가부터 '퇴사=탈출'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퇴사 후 이직을 하든, 창업을 하든 중요하지 않고 퇴사는 무조건 부러운 것이다.
'퇴사 후 뭘 할 거냐'는 물음에 나의 대답은 명확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일단은 좀 쉬고, 프리랜서가 되었든, 사업이 되었든 독립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굶어 죽기 딱 좋은 퇴사 사유였는데,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듣고 의외로 함께 일하던 친구들은 부럽다는 반응이 많았다. 나보다 훨씬 더 능력 있고 일 잘하는 친구들이 계획 없이 무작정 퇴사하는 나를 부러워했다.
다양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람들이 퇴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능력이 없거나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심하고 실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다 보니 퇴사의 결심과 실행까지는 확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확신의 순간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누군가는 더 이상 이곳에서 버틸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누군가는 퇴사 후에도 먹고살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을 때, 누군가는 또 다른 시도를 위한 확신이 들었을 때가 확신의 순간이다. 나는 독립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가 확신의 순간이었다. 확신에서 결심으로, 또 실행하기까지 그 과정이 쉽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에 퇴사를 부럽게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도 없이 어쩌려고...
확신에 찬 나를 뒤흔든 두 번째 반응은 걱정이었다. 걱정의 최고조는 단연 가족들이었다. 집에서 늦둥이 막내로 자란 내가 한창 일할 나이에 퇴사를 하겠다고 하니 다들 걱정이 많았던 모양이다. 가족들의 꼬리의 꼬리를 무는 걱정을 흔히 경험했던 나는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플랜 B를 먼저 꺼냈다.
" 나 퇴사하고 해보고 싶은 걸 할 거야. 1~2년 해보고 안되면 회사로 돌아오려고. "
걱정이 많은 엄마는 뭘 할 건지, 그걸로 먹고살 수 있는지, 실업 급여가 나오는지 등의 구체적인 질문을 쏟아냈다. 엄마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던 나는 퇴직금과 수입 하락에 따라 적당히 버틸만한 자금이 있으며 안 되면 프리랜서를 뛰어서라도 충당하겠다고 적당히 둘러댔다. 굶어 죽지 않는다고 농담을 하며 여유롭게 웃어 보였지만,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을 억지로 눌렀다.
정말 의외였던 건 아빠의 반응이었다. 엄마의 질문 공세를 받고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우려와는 달리 아빠는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을 내놓았다.
" 처음부터 안 되면 돌아가야지 생각하지 말고 끝까지 부딪혀 봐. "
아빠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게 놀라웠다. 아빠는 한 때 내가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기를 원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는 회사 안에서 인정받고 승진하며 안정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랐다. 그런 아빠에게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해 보라'라는 말을 들었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며 어릴 때부터 끈기가 있었으니 끝까지 해보라며 나를 독려했다. 나조차 잘 보이지 않았던 나의 미래에 확신을 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지금도 흔들릴 때면 아빠의 한 마디가 떠오른다. 아빠의 한 마디가 없었다면 아직도 수없이 흔들리고 있지 않을까.
때로는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어야 할 때도 있다. 중요한 인생의 결정을 할 때 나는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 편이다. 퇴사를 하기까지도 수많은 걱정에 부딪히고 흔들렸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당연히 새로운 시도를 걱정하지만, 내 인생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은 결국 나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확신마저 흔든다면 적당히 귀를 막고 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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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딱히 계획은 없는데 퇴사는 하고 싶습니다.
2. 퇴사, 저도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3. 퇴사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