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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빈 Jan 03. 2023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제주로 떠납니다!

퇴사 후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제주 한 달 살기였다. 평소 제주도를 좋아해서 오랜 버킷리스트이기도 했고 퇴사 후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온전히 휴식할 수 있는 갭 먼스(Gap month)가 필요했다. 커리어만 보고 달려왔던 7년 간의 생활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 갈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었다. 별 다른 계획 없이 퇴사했던 것처럼 계획 없이 제주로 떠났다.


원래 계획을 하지 않는 편이긴 했지만, 이번 여행은 특히 계획 없이 가보기로 했다. 계획하기 귀찮아서는 아니었다.(절대로) 어디는 꼭 가야하고 어디서 뭘 꼭 먹어야 한다, 이런 계획을 하면 기대를 하게 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하기도 한다. 반면에 계획하지 않은 여행은 새로운 것들을 접할 기회가 많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에 훨씬 더 행복했던 경험이 많았다. 완전한 쉼을 위한 여행에서 뜻밖의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되기를 꿈꾸며 제주로 떠났다.




제주에서의 한 달은 예상처럼 행복했다. 느긋하게 일어나 그 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한 달을 보냈다. 자고 싶은 만큼 자고, 맛있는 곳을 찾아 밥을 먹고, 편안한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고, 예쁜 곳을 찾아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당연히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일상이었다. 호다닥 일어나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기를 반복했던 일상은 너무 먼 얘기 같았다.

여행 중 만난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에 참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고, 그들은 모두 나의 이야기를 듣고 응원해 주었다. 때로는 나를 잘 모르는 타인에게서 듣는 응원이 큰 힘이 될 때도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일상이 평안하니 생각이 많아졌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이렇게 길고 편안한 휴식을 가져 본 적이 있었나. 중간중간 몇 번의 퇴사 후 다음 회사에 입사하기까지 쉬는 시간이 있었지만 늘 같은 고민을 했다. 이전 회사보다 더 나은 회사에 가고 싶다. 연봉도 조금 더 높았으면 좋겠다. 회사는 다 거기서 거기일까? 내가 제대로 된 선택을 했을까?


다음 회사를 확정하고 나서도 나는 늘 고민했고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민보다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했다. 제주에서의 한 달을 콘텐츠화해서 돈도 벌어 보고, 온라인 스토어도 열고, 퇴사 이야기를 브런치에 글로 남겨 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제주 한 달 살기의 끝이 이직 준비였다면 예전과 똑같은 고민을 하며 막막해 할 수도 있었겠지만 해보지 않았던 일들이라 문득 설레기도 했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날 저녁, 비자림을 산책한 후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한 달이 너무 빠르게 흘러갔다. 처음으로 걱정이 없었던 한 달 간의 완전한 휴식 시간이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움도 남았다. 다시 이런 날들이 올 수 있을까, 두렵기도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여행 중 만났던 일행의 한 마디가 떠올랐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만난 일행은 한 달이나 있었는데 못 가본 곳이 많아 아쉽다는 나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 아쉬워야 다음에 또 오고 싶죠. "


그 말이 나에게 너무 크게 남았다. 한 달 살기를 하고 나니 다음엔 1년 살기를 하고 싶어졌다. 다음 1년 살기를 위해 지금부터 열심히 해서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인디펜던트 워커로 반드시 자리를 잡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 후 나의 목표는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뭐든 경험해 보고 나니 Next Step이 생겼다. 지금 계획이 없고, 하고 싶은 게 없더라도 뜻하지 않은 경험을 통해 강력한 Next Step이 생기기도 한다. 계획하지 않았던 여행에서 생각지 못한 사람들과 풍경들을 만났던 것처럼, 내 다음 Step에서도 생각지도 못한 설레는 일들이 생겨날 것을 기대하며 제주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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