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9개월 차의 고민
돈이 되는 일이냐, 하고 싶은 일이냐
대학교 1학년 때 연극 동아리 활동과 축제, 활동 기획 같은 활동들을 하면서 공연이나 오프라인 기획 쪽에서 일해 보고 싶었다. 내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어 공연이나 현장에서 실현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도 쏠쏠했다. 안 가봐도 배고플 만한 길을 생각하면서 고민이 되었다. 돈이 되는 직업을 선택해야 할까, 하고 싶은 일을 해야할까.
고민 끝에 나름의 대안을 찾았다. 내 아이디어를 현실화 하고, 결과물에 대한 반응을 확인할 수 있고, 약간의 돈도 벌 수 있는 방법, 그게 SNS 콘텐츠 마케터였다. 대행사 SNS 콘텐츠 마케터로 일을 시작하면서 몇 번의 이직이나 회사 선택을 하면서도 '돈이냐, 하고 싶은 일이냐'에 대한 고민을 했다. 같은 대행사 마케터라도 광고 영업과 같은 직무에서 제시하는 연봉은 달콤하고도 괴로운 유혹이었다. 커리어를 쌓아 나가면서 하고 싶은 일들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이직이나 회사 선택에 있어서 나는 언제나 돈보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다. 연봉은 작고 귀여웠지만 가끔씩 내가 하고 싶었던 오프라인 기획에 대한 기회가 생기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결과는 짜릿했다.
퇴사를 하고 나면,
이 고민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벌 수 있을 줄 알았으니까.
쇼핑몰을 시작한 초기, 상품 사입에 도전했다. 사입 상품의 기준은 단순히 적당히 괜찮아 보여서, 나도 사고 싶어서. 터무니없이 단순한 이유로 재고를 왕창 매입했다. 스튜디오에서 열심히 사진도 찍고 예쁘게 상세페이지도 만들고 콘텐츠도 만들고 광고도 돌리고 마케팅을 했다. 그 과정은 재밌었지만 마케팅 비용만 왕창 지출하며 폭망했다.
실패의 쓴 맛을 보고 나서 재미나 하고 싶은 일보다는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여러 강의와 유튜브 등을 찾아 다니다 해외 구매 대행 사업을 알게 되었다. 해외 상품들을 소싱해 고객이 구매하면 직구를 대행해 주는 사업이었다. 초보자로 다양한 상품들을 소싱하면서 상품과 유통에 대해 공부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배송대행을 해주는 과정이 복잡하고 CS도 까다로워서 경쟁자도 적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매대행에 대한 책 3권을 읽고 곧바로 구매대행 사업에 뛰어들었다.
예상처럼 구매대행은 사입이나 국내위탁보다 돈이 되는 일이었다. 여러가지 상품들을 소싱해 보고 '이런 게 팔리는 구나'를 깨닫게 되는 과정은 나름 재밌기도 했다. 그렇게 1~2개월을 진행했지만 이게 과연 나에게 맞는 일일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회사 밖에서도 마케팅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마케팅은 커녕 하루종일 소싱과 CS 처리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해외 배송, 통관 과정에서 문제들은 더 우당탕탕 터지기 시작했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CS 처리 하느라 바빴다.
덕분에 수입은 증가하고 있었지만 퇴사 9개월 차, 나는 또 '돈이냐, 하고 싶은 일이냐' 고민에 부딪혔다. 차라리 이렇게 돈을 벌 바에야 회사로 돌아가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커리어를 더 쌓아보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맞을까.' 고민에서 시작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근본적인 고민까지 들었다. 나는 아직까지 직장인 친구들이 더 많기 때문에 직장인들의 평온하고 안정적인 삶이 눈에 들어왔다. 남들처럼 한 달에 한 번씩 월급 받으며 주말을 기다리고, 때 되면 휴가가고 여행가고, 이렇게 사는 게 더 행복하게 잘 사는 게 아닐까.
그렇게 인생의 근본적인 고민과 회사로 돌아갈까 말까 하면서도 꾸역꾸역 구매대행 일은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업하시는 분들과의 모임에서 요즘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까지 내 생각은 복잡했지만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며 말하고 있던 중,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고민 중인데 일단 해 보고는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과정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 순간 정신이 들었다. 돌아보면 그랬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또 찾아서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직장생활 7년은 고민과 힘든 날들도 많았다. 고속 성장하는 친구들의 연봉과 달리 내 연봉 상승은 너무나 더디기만 했다. 하고 싶었던 일이지만 때로는 지겹기도 하고 잘 안 풀릴 때도 있었다. 이직할까 고민하며 꾸역꾸역 회사를 다닐 때도 있었고 앵무새처럼 '일하기 싫다' 를 달고 살던 때도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은 행복하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과정마저 매일매일이 아름답고 꽃길은 아니다. 이 악물고 버텨야 하는 하루하루도 있고 그마저도 죽을만큼 힘든 날도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직할까 고민하며 꾸역꾸역 다닌 회사는 경력이 되었고, 나에게 맞는 일일까 고민하며 꾸역꾸역 이어갔던 사업은 성과가 되어 돌아왔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오늘도 방황하고 계신 여러분에게.
망설여질 때가 뭐라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건 그것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겼을 때 고민해도 늦지 않습니다.
성진 스님 <내 걱정 어디서 왔을까> 중에서
돈이 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할 때 읽었던 책에 이런 글귀가 나왔다. 뭘 해야할지 고민하기 보다는 뭐라도 시도해 보라는 것이다. 혹시 나중에 이 길이 아니었다고 해도 이 시간이 최소한 나에게 필요한 데이터나 인사이트를 남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또 나는 매일 해외 상품을 소싱하고 CS를 처리하며 우당탕탕 구매대행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고 싶은 일도 조금씩 구체화해나가고 있다. 때로는 지루하고 현타도 오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시기로 생각하기로 했다. 지루한 하루하루를 견딘 만큼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는 짜릿한 날들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