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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빈 Oct 03. 2023

계획 없는 퇴사 1년 후, 그래도 행복한 이유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퇴사한 지 벌써 1년. 퇴사할 때 내가 가진 계획이라곤 제주 한 달 살기를 떠나겠다는 계획 뿐이었다. 그 후에 어떻게 먹고 살지는 다녀와서 생각해 보겠다는 게 내 계획의 전부였다.


계획 없이 살아도 괜찮을까
계획은 없지만 그냥 놀고 싶었습니다.


20대 초반에 장기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을 보고 나도 인생에 중장기 계획을 세워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세운 계획대로라면 지금 나는 공연 기획사에서 일하다 미국 유학을 떠났어야 했다. 아직 일도 시작하지 않은 시기에 세운 계획은 지금 보면 계획이라고 하기도 힘든 허무맹랑한 꿈일 뿐이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원하는 것을 찾고 계획을 세워 꾸준하게 성장해 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직접 경험해 보면서 '내가 이런 일을 이런 이유 때문에 좋아하는구나'를 알게 되고 일에 대해 더 애정이 생기고 재미를 느꼈다. 벽에 부딪히면 진로를 변경하기도 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변화하고 적응해 왔다. 덕분에 어딜가든 변화에 대처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근거 없는 자신감 덕분에 계획 없이 냅다 퇴사도 내지를 수 있었다.




계획 없이 퇴사한지 1년. 퇴사 전에는 월 몇 천만원을 벌면서 여행하며 일하는 유튜버들을 보며 달콤한 생활을 꿈꿨지만 퇴사가 달콤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 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매일 대답이 달라지는 하루하루였다. 그만큼 많은 시도와 변화가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고민도 많았고 힘든 날도 많았다. 안정된 직장 생활과는 다른 길을 가면서 그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건 뭐지?'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더 깊고,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구체적인 계획이 없이 퇴사를 했기 때문에 방향성에 대한 더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더 다양한 일들을 해보면서 방향성을 찾아 나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정확히는 계획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초반의 계획처럼 허무맹랑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고민하며 계획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알아가며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아는 것이다. 취업 준비 때 이후로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나에게 가장 많이 던졌던 기간이었다. 취업 준비를 할 때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여줄지'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내가 찾았던 답들은 오직 나에게 집중한 답들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일의 의미, 나는 이 일을 통해 최종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가 돈을 버는 이유 등 보여주기 식이 아닌 진짜 나를 찾아가는 질문들이었다.


현재 나의 목표는 제주 등의 지방에 커뮤니티가 있는 워케이션 숙소를 운영하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과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는 내 공간을 오픈하는 게 예전부터 나의 꿈이었고 제주도나 공주 등에서 살아보기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목표였다. 겁이 많은 나는 초기 비용이 많이 드는 오프라인 사업보다는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온라인 사업을 통해 사업을 경험하고 자본을 키워 나가려고 한다. 템포가 느리고 고민이 많은 나는 느리게 돌아돌아 가더라도 단단하게 성장하고 싶다.

회사로 다시 돌아가는 선택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 만약 회사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사업을 경험했던 이 시간이 매몰비용은 아닐 것 같다. 초짜지만 사장으로 살아 본 경험은 직원으로서도 회사와 전반적인 일의 프로세스를 더 잘 이해하고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0, 50대가 되면 지금의 이 계획이나 목표도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 때 가면 또 그 때의 계획이 생기겠지. 계획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나에게 인생의 계획보다 중요한 건 계획이 바뀌고 고민의 순간이 와도 담담하게 버티며 나아갈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이다.




고민의 결과인 방향성을 따라 나아가고 있지만 지금도 나는 고민한다. 안정적으로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 현타도 온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 그 고민 끝 결정의 방향은 하나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방향일까?

수많은 고민 끝에 한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내가 꽤 만족스럽다. 지금의 내가 만족스러운 이유는 회사 다닐 때보다 시간이 자유로워서 같은 단순한 이유는 아닌 것 같다. 지난 1년 간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내가 원하는 나로 살았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퇴사를 하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저질러 보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거절하고, 그렇게 온전히 나를 위한 선택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위한 수많은 선택과 고민을 했던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며 앞으로도 방향성을 찾아 나가며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기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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