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앵(Amiens)에 갔다

노트르담 드 아미앵 대성당을 보았다

by 다나 김선자



종탑도 뻬렛(Perret) 탑도 보이지 않자 참 실망스럽게도 딱딱하고 재미없는 썰렁한 광장이 나오고 그 맞은편에 규모가 크지 않는 고딕식 대성당이 우아한 자태로 서 있다. 예상치 못한 이런 멋없는 곳에서 아름다운 대성당을 마주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광장 대각선으로 무뚝뚝한 4층 여행안내소 건물은 세월을 입은 대성당과 애써 조화를 이루고자 석회석 전통식으로 지었건만, 미끈하게 부각되어 부자연스럽고 대성당과도 부조화를 이룬다. 그 시간의 간격을 좁히기에는 너무나 가당찮다. 탁월한 현대 기술로 잘 다듬질된 모습이 되레 정이나 망치질보다 경직되고 차갑게 느껴져, 세월이란 억지로 만들 수도 속일 수도 없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

반면, 노트르담 드 아미앵 대성당의 침착하고 아담한 자태는 마치 온화한 품성을 가진 아름답고도 숭고한 젊은 여인 같기도, 또한 그 세밀하게 조각된 파사드(façade:정면, 표면)를 보고 있으면 음산한 겨울날 활짝 피어난 한송이 아름다운 꽃이며, 보석 같다.


나는 널리 알려진 유럽의 많은 대성당을 가보았지만 그 어느 것도 똑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슬쩍 보아 다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각자 독특한 개성과 그 역사적 흐름을 반영하며, 시대적 건축양식이나 크기, 형태에서 그 지방의 경제력과 종교적 문화적 세력을 짐작케도 한다.

특히 고딕식 건축은 수세기의 획을 긋는 엄청난 기술적 발전이고 변화이며 비전이었다. 그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적절한 부분에 알맞게 어울리는 섬세하고 면밀한 장식으로 과잉되지 않은 소박함과 간결미가 오히려 격조와 품위를 높인다. 그 전체적 규모에 훌륭한 균형과 비례가 조화를 이루어 가히 숭고하면서도 장엄하고 우아하다.

대부분의 고딕식 건축물은 12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프랑스에서도 파리를 거점으로 그 주변 도시로 확장되었다. 가장 최초의 고딕식 건축물은 12세기 건축된 파리에서 북쪽으로 5킬로 미터 떨어진 생-드니 시에 있는 생드니 바질릭(Basilique de Saint-Denis)이다. 프랑스의 모든 왕들이 잠들고, 내 남편 A가 세례를 받았다는 곳.

그리고 고딕식 심장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가장 아름다운 13세기 건축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이어 파리 동쪽에는 랑스, 샨스, 스트라스부르, 남쪽으로 샤르트르, 오를레앙, 서쪽의 루앙, 북쪽에는 샨-니스, 랑, 보베 등 그리고 이곳 아미앙 노트르담 대성당이 그 대표적인 고딕식 대성당이다.

대성당은 오늘날까지도 고고한 세월을 무색게 하며 도시의 자랑스러운 얼굴로 찬란하게 자리한다.


우리는 대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추운 날씨지만 성탄을 앞두고 꽤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여 분위기가 쓸쓸하지는 않다. 프랑스인들에게 가톨릭은 그들의 뼛속까지 스며있는 문화지만 대부분은 종교를 떠난 지 오래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성당은 평생에 세 번 간다고 한다. 즉 태어나서 세례를 받고, 결혼식을, 그리고 죽을 때다. 그 역시 옛말이 되어 요즘같이 간단하게 치르는 서민들의 결혼식은 굳이 성당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성당을 찾는 것은 일상적인 믿음에서가 아닌, 역사적 문화적 의미로 찾을 때가 더 많고, 성당 미사에 참석하거나 기도하는 거의 모두가 노인과 이민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오늘 방문객들도 촛불을 밝히기보다는 우리처럼 건축미에 감동과 찬사를 보내고 있는 여행객들이 대부분이다.


예전의 나는 성당 안을 걸으면 그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고, 돌로 된 기둥과 바닥의 서늘한 냉기가 음침하고 싫어 얼른 나가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 아름다움에 더 이끌린다.

엄청난 높이에 기품 있는 대들보가 다이내믹하게 솟아 아치형으로 이어져 회랑과 중앙홀을 만들고, 다시 위로 힘차게 뻗어 아름다운 십자형 곡선으로 궁륭 천장의 풍부한 볼륨감을 형성한다. 그 아래 크고 긴 창들을 만들어 벽의 무게를 축소시켜, 더 넓고 웅장한 공간을 이루었다. 창에는 화려한 색조의 비트로(vitraux:스테인드글라스)를 장식하여 자연의 빛을 최대한 받아들임으로써 화려하고 신비로움을 주고 더욱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게 했다.

아미앵 대성당은 모든 고딕식 그것들과 같은 건축기법이지만 서쪽과 남, 북쪽의 타오르는듯한 플람보와양(flamboyant:불꽃 문양의) 양식 화려한 장미 창, 그 유연한 곡선들이 이 대성당의 독특함을 만들어낸다. 나머지 크고 긴 창들의 비트로(vitraux:스테인드 그라스)는 지나간 세월 따라 쓸쓸히 사라지고, 심심한 투명 유리창으로 남아서, 몇몇 현대적 문양으로 복원된 창들과 함께 그 체면을 유지한다. 서쪽 원화 창 밑에는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이 있으며, 바닥에 기하학적으로 장식된 미로 양식 타일은 그 현대적 감각이 시대를 망각케 한다.

성당 내부 곳곳의 다양한 장식들과 오드 헐리에프(haut-relief:높은 돋을새김)로 세밀히 조각된 부조물들은 그 입체감과 명확한 비율이 어찌나 생생히 실제감 있게 느껴지던지 탄성을 일으킨다.


울창한 너도 밤나무와 떡갈나무 숲 속을 산책하듯이 우리는 천천히 성당을 한 바퀴 돌았다.

좀 더 여유롭게 감상하고픈 마음에 우선 점심식사를 한 후 다시 오기로 하고 성당문을 나섰다. 출입구 계단 위에는 허름한 가방과 너저분한 소지품을 잔뜩 풀어놓고 동전 담은 통까지 놓여 있지만 구걸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주면 받고 안 줘도 그만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이 또한 프랑스 가톨릭 문화에서 나온 것으로써, 나눔을 의미, 해석하여 당당한 구걸자의 권리처럼 청할 뿐이다. 특히 성당 앞에서 자주 보는 풍경으로 구차스럽지도 비굴하지도 않아 보기 좋고 부담도 없다.


나는 A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에, 성당을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그는 노숙자들의 펼친 손바닥에 동전을 집어주던 모습을 보고 "당신은 참으로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구나'라고 말하자, "이건 프랑스 전통 관습이며 문화다"라고 했던 A의 답이 생각난다.


오면서 A가 눈여겨 두었다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지방 도시라 점심식사 시간이 정해져 있을까 급히 서둘렸지만 현대 자본주의 유행은 시간이나 메뉴도 우리의 사고보다 더 신속하게 움직여 파리와 별반 차이가 없다. 오직 실내에서 감도는 공기와 장식적 정취만큼은 파리의 그것과는 다른 벨기에나 플라망드, 독일 같은 북쪽 지방 특유의 분위기를 풍긴다.

늦은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포근한 실내 온기를 남겨둔 채 밖으로 나오니 갑자기 기온차를 심하게 느낀다. 축축한 안개비가 음산하게 내리는 가운데 쌩하니 비바람까지 스쳐 따뜻한 살롱이 그립다. 식사 후 배도 부르고 더욱 떨어진 체온도 보온할 겸 우리는 여행안내 사무실로 들어갔다. 쾌적하게 넓고 따뜻한 공간에 소파까지 있어 소화도 시킬 겸 편안히 휴식을 취했다.

잠시 후, 우리는 얼른 성당 안으로 돌아왔다. 해가 없는 겨울 낮은 짧으므로 서둘러 하나씩 주의 깊게 감상을 이어갔다. 오전보다 방문객들은 더 많고 가이드를 동반한 그룹 관광객도 눈에 띈다.


북쪽의 작은 베니스(petite Venise du Nord)라는 별칭을 가진 생-루(Saint-Leu) 지구로 향했다.

이곳은 대성당 북쪽에 위치한 중세 도시로써 까날(canal:운하)을 끼고 집들이 길게 형성되었다. 중세인들은 편리한 교통 운송수단으로 운하를 만들어 도시 경제를 활성화시켰다. 프랑스 곳곳의 옛 도시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곳 아미앵은 중세 때 섬유 염료 가공으로 꽤나 풍요로운 도시였다. 웅장한 대성당이나 까노(canaux:운하들) 건설만 보아도 그 옛날의 다이내믹하고 활기찬 경제력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우리는 포석을 밝으며 수로를 건너 옛 도시를 한 바퀴 돌았다. 텅 빈 거리는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듯, 카페나 식당, 선물가게 문들이 굳게 닫혀 음침한 겨울 날씨처럼 스산한 모습이다. 아마도 좋은 계절, 관광객을 위해 문을 열겠지만 오늘은 분명 아니다.

왼쪽으로 돌아 옛 도시에서 바라보는 대성당은 언덕 위 높다랗게 우뚝 솟아 있어 정면에서 보던 거와는 또 다른 장엄함과 아름다움, 권위와 위엄이 느껴진다. 대성당 후진의 버팀 벽이나 살이 되는 반 아치형 걸침 벽은 조각상들과 어울려 주도면밀 리듬적이고 동적인 힘찬 구조다. 공원의 자연스럽게 우거진 겨울 나뭇가지 복잡 미묘한 곡선들이 회색빛 우울한 날씨와 앙상블을 이루어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상함은 한 편의 서사시를 읽는듯한 운치에 환성을 지르게 한다.


나는 걸으면서 대성당을 향한 중세 서민들의 숭배하는 마음을 상상해 본다.


벌써 어스름이 도시를 감싸려 한다. 우리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다시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은은하고 온화한 불빛이 부드럽게 내부를 밝히어 낮과는 색다른 분위기를 준다. 낮은 불빛에 비친 장식 부조와 조각상들이 그림자에 의해 선명한 입체감으로 마치 생명을 불어넣은 성인들 모두가 되살아 온 듯이 생동감을 준다. 여러 조각상에 장식된 금박과 중앙 심장부의 풀무질된 철장에는 황금 도색이 은근하게 빛을 발하여, 이 호화롭고 풍부한 화려함에 성당 내부는 성스러움과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성탄 트리와 촛불마저 아까보다 더 활기차다.


중심가를 빠져나와 어두워진 도시를 걸었다.


아미앵 박물관은 내부공사로 문을 닫아 관람이 불가했고, 몇 년 전에 읽었던 <80일간의 세계일주> 저자 프랑스 작가 쥘 베른(Jules Verne)이 18년을 살았다는 생가 방문도 다음 기회로 미뤘다.

집에서 차동차로 고작 한 시간 남짓 거리지만, 마치 이웃나라 북쪽에 온 듯 낯설게 다가왔는지 파리에서는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쉽게 건너던 버릇도 이곳에서는 어쩐지 주춤하는 조심성이 생긴다. 북쪽 소도시의 차분하고 질서 있는 분위기에 우리의 자동적 행동 반응이지 아닐까 생각한다. 남편 A 또한 나와 동감하니 나만이 느끼는 이방인은 아니었다.


밤이 찾아왔다.


같은 길이지만 올 때와는 다르게 어둠의 미로에서 이정표를 놓치지 않으려, 우리는 무사히 고속도로를 진입할 때까지 크게 뜬 눈을 창에다 바짝 붙였다. 모두들 일터에서 돌아오는지 차량이 낮 보다 훨씬 많았다. 비가 세차게 내린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자동차 와이퍼에도 아랑곳없이 시야가 자꾸자꾸 흐리다. 깜깜한 사방에서 자동차 불빛과 거칠게 밀려오는 전조등만 점점이 떠 있을 뿐, 세상이 온통 물안개에 갇혔다. 맞은편 차선에서 잽싸게 날아온 물세례를 받은 자동차가 강하게 소리를 지른다. 내 스트레스는 아미앵 공기에 날려 보내고 신선한 기분으로 되살아났으나 자연이 불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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