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와 가고시안 갤러리
토요일 오후, 작업실에만 박혀 있기에는 잔인하게도 좋은 날씨. 콧바람도 쐴 겸 그동안 미뤄 두었던 조각가 <리처드 세라, Richard Serra> 전을 보기로 했다. 서둘지 않으면 전시 기한을 놓칠 수도 있다.
부르제 공항에 있는 <갤러리 가고시안, Galerie Gagosian>으로 향했다.
이 갤러리는 샹젤리제 쪽에도 있지만, 파리에서 북동쪽 13km 떨어진 부르제 공항(Aéroport du Bourge)에도 있다. 파리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이 공항은 샤를 드 골 공항이 생긴 이후로는 비즈니스 전용 개인 제트기, 그리고 파리 에어쇼 등에만 이용된다. 그러므로 붐비기는커녕, 주변 환경이 산업단지라 사람의 왕래도 거의 없는 외진 곳이다. 이런 곳에 세계적인 갤러리가 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쉽사리 생각지 못할, 나 역시 감히 상상조차 안 했다. 따라서 언제나 방문객이 뜸할 뿐 아니라, 조용하므로 작품 감상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게다가 넓고 한산한 주차장까지 갖춰져 주차에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될뿐더러, 복잡함 없이 가볍게 다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초행길일 경우, 대중교통이용 문제나 길 찾기에 약간의 미묘한 어려움은 따를 수 있다.
예술과는 전혀 동떨어진 이 삭막한 곳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유명한 세계적인 갤러리 <가고시안>이 있다는 게 처음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왜? 하필 여기에? 어떤 까닭에서?
하지만 그곳을 방문하고서는 어리둥절 의아한 가운데서도 납득되었고, 그 낯섦에 되레 경이로웠다.
결과적으로 비즈니스나 상업적 내 사고의 범위가 상식선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예술이 차지하는 몫이 크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지만 피상적이었다. 솔직이 그 실체에 적잖이 놀라웠다. 다시 말해서 이 갤러리는 우리 같은 일반인을 겨냥한 곳이 아닌, 전용기를 타고 오거나 적어도 임대해 올 수 있는 미술상 또는 소장가 및 세계적인 부유층 고객을 상대로, 이들의 편의에 알맞게 만들어진 갤러리다.
전시회가 자주 기획되지도 않는다. 일 년에 서너 차례, 한 전시마다 몇 달씩 이어진다. 물론 매번 우리 기호에 맞는 좋은 전시만 열리는 것도 사실 아니다. 그러나 근간에 시몬 한타이(Simon Hantai, 1922-2008)의 대작품들도 여기서 보지 않았던가!
어쨌든 간에 훌륭한 작품이 가까이에서 전시된다는 것은 반갑고 좋은 일이다. 그게 가고시안이던 아니던 또 무엇이면 어떠라? 좋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
갤러리는 기존의 산업용 건물에 내부만 리모델링하여, 겉에서 보아 특별하지도 않다. 내부 역시 기본 골조는 그대로 둔 채 볼륨감을 살린 1, 2층 복층 열린 공간이다. 또한 외부 환경과 유사한 합리적인 간결함으로 소박하며 그러나 넓다. 독립된 한쪽 공간에는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 카탈로그가 진열되어 누구나 쉽게 꺼내 볼 수 있다는 장점과, 구입도 가능하다. 특히나 방문객이 거의 없어 작품 감상은 물론, 조용해서 흡사 개인 서재처럼 이용 가능하다는 점이다.
갤러리 입구에서 벨을 누르자 경호원이 문을 열어준다. 안으로 몇 걸음을 떼어놓자 주황빛 엄청난 철벽이 눈앞에 우뚝 서 있다. 넓은 공간에 이 육중한 쇠 덩어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물며 벽에는 드로잉 된 작품 한점 없다. 철이라 말했지만 이 역시 습득된 지식일 뿐, 하나의 알 수 없는 거대한 물체 같았다. 그러나 이 강철판은 공간 전체를 압도한다. 거기서 철이 지닌 차가움이나 딱딱함은 없다. 오히려 따뜻하게도 느껴진다. 미니멀하다. 아름답다. 이 아이러니 같은 조화야말로 작가 세라의 능력이고 쇠가 만들어내는 힘일 것이다.
무엇이 더 필요하라!
우선 조각가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에 관한 생애와 그의 작품세계를 간단히 옮겨보면, 그는 1938년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미니멀리즘(minimalisme)에 부합하여 강철로 추상적 작업을 하는 조각가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소에서 일한 아버지, 예술대학 학비 마련을 위해 제철소에서 일했던 경험이 향후 그의 예술작품에 미친 영향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1965년 파리에 체류하며 아카데미 그랑 소미에르 (Acadénie de la Grande Chaumière)에서 작업을 한다. 이때 브랑꾸지(Brancusi, 1876-1957)의 작품을 보고서 감탄과 더불어 존경을 한다. 그리고는 <이것이야말로 조각으로써 내가 해야 하며 가야 할 길이다>고 생각했다.
그는 1966년 로마에서 첫 전시를 열고, 그해 말경에 뉴욕으로 돌아가 현재까지 그곳에서 살며 작업한다.
세라의 처음 작품들은 추상 표현주의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벽 위에 용해된 납을 투척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는 매우 빨리 미니멀 쪽으로 방향을 돌려 야심 찬 작품들을 실행한다.
그 주도적 작품은 둥근 스테인드글라스와 기후 불순에 대비해 표면 처리된 커다란 강철판들을 사용하여 바닥에 균형을 잡아 놓는 방법이다. 내후성 강한 거대한 규모의 거친 강판에 압력을 가해 유연하게 휘어지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강판들을 이어 붙어 형태를 만들고 부드러운 곡선의 길을 만들고 새로운 공간을 형성한다. 이것은 지극히 수학적인 공식하에 계산된, 설립된 일종의 건축적인 방식이다. 마치 마분지로 입체 도형을 만들어 놓은 듯이 가볍고 부드럽다.
작가는 때로 붓으로 녹이 슨 양상을 나타내기 위해 판 위에 덧칠도 한다. 이 또한 철의 산화작용으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재료가 변형되기 전에 조각품 색 관리 차원으로서의 한 방법이다.
그는 납과 강철에서 강요된 드라마틱한 힘을 증명함으로써, 이 무거운 철판의 중력으로 무대를 만든다. 수평에서, 또는 펼치거나, 방향을 확장시키며, 중력으로, 덩어리로, 무게로 실현된 가치로써 이처럼 다르게 바꿀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어떠한 악천후에도 저항할 수 있는 강철의 속성과 그 뉘앙스를 활용한다. 재료는 공기의 접촉과 시간 속으로 스며들어 녹이 슬면서 자연히 고색을 띤다.
이같이 조각은 장소와 공간에서 하나의 새로운 비전을 허용한다. 이것은 그 주변 환경과 더불어 또 다른 오묘한 대화를 만드는 것이다. 관객은 그 엄청난 규모에 압도되기도, 그 중력에, 무게에, 힘에 매료된다. 거기서 관객들은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가 체험하고 느낀다.
우리는 작품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유연하게 휘어진 곡선을 따라 거대한 장벽 속을 걸어 들어갔다. 어느새 나는 남편과 헤어져 성벽 아래서 홀연히 사색하며 걷고 있었다. 이끼 같은 흔적에서 세월을 느끼며, 각자의 리듬에 따라, 때로는 웅장한 대성당을 만난 듯, 그러다 왕의 요새에 들어온 듯도 했다.
또는 긴 강줄기를 따라 좁혀지는 어두운 협곡에서 불현듯 열리는 밝고 드넓은, 더 깊숙한 막다른 공간을 만난다. 선회점. 마치 아르데쉬 협곡의 커다란 웅덩이 같기도, 크레타 섬 자코스 어느 협곡과 맞닿은 바다 같았다. 거기서 유영하는 나를 본다.
우리는 다시 만나 함께 걷다 또다시 모퉁이로 사라진다. 마치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숨바꼭질을 하듯.
이 유연하게 이어진 곡선은 우리를 이끌고, 인도하며,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꾸게도 다시 흐르게도 한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 내려다보았다. 단순하나 다각적인 형태, 그리고 풍부한 변화감.
여기에 팽창된, 확장된, 변형된 다양한 공간, 시간. 단절과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하나의 놀이. 압도되는 힘, 무게, 이것은 거대한, 미니멀한 하나의 조각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