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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도 퇴사하겠어!

미완의 나 상담일지2

by 선주

퇴사를 결심하고 바로 사직서를 내던진 건 아니다.

결심을 한 후에도 수많은 결정들이 나를 기다렸다. 언제 그만둘지, 누구에게 먼저 이야기할지, 누구에게는 언제쯤 이야기를 해야 할지, 퇴직 사유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등등 그만둔다는 것을 애써 결정하고 나서도 수많은 것을 고민하고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 막상 하나하나 이런 행동이 현실로 다가오자 불안감이 밀려왔다. 나는 이 불안을 부정할 수 없었고, 그래서 내 선택을 다시 돌아보기로 했다.


우선 이 괴로운 사퇴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퇴사가 아닌 대안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사실 내가 맡은 직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문제라면 인사이동을 신청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다른 일을 하면서 환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다른 직무를 맡는다고 해도 조직구조에서 오는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 조직에서 딱히 맡고 싶은 다른 사업도 없다. 그러면 이 업무를 계속 하면서 일에 쓰는 에너지를 줄이는 방향으로 조정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조직에서는 그렇게 애쓰며 일할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실제로 많은 동료들이 그런 방식으로 스트레스 관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잘 안 되었다. 대상자를 만나면 자꾸 마음이 앞섰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면 인사이동이나 사업에 대한 애착을 덜어내는 방식은 대안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 더 진취적인 액션도 취해보기도 했다. 뜻 맞는 동료들과 의견을 모아서 조직의 발전방향에 대한 건의도 했고, 개별적으로 내가 맡은 사업에 대한 비전도 제안해 보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진지하게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뭐가 문제라는 거야?", "완벽한 조직이 어디 있겠어!"라는 공격과 "쌤 말은 맞는데 아마 안 될 거예요."라는 무기력한 피드백 속에 나도 점점 힘이 빠졌다.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마음이 통하는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심정을 토로해 봐도 현실이 바뀌지 않으니 진짜 위로는 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이 조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었고,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똑같은 문제를 계속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퇴사를 한다는 것을 물리고 싶지 않다. 이것은 내가 선택한, 확고한 결정이다.


그런데 나는 왜 불안할까. 그래서 내가 불안감을 느끼는 원인을 찬찬히 살펴보기로 했다.

가장 큰 것은 ‘실업’ 상태에 대한 불안이었다. 이것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오는 두려움이었다. 20대 후반 직장을 그만두고 1년여를 실업 상태로 보내면서 고생을 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멋지게 사표를 던지고 나와서 처음에는 그저 기쁘고 즐거웠다. 모든 속박과 구속을 벗어던지고 진짜 나를 찾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 나다움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경제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처절하게 체감하게 되었다. 나는 때가 되면 먹어야 하고, 누울 잠자리가 필요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취미활동도 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퇴사를 하게 되면 수입이 사라지고 가난이 찾아올 것이다. 가난은 또다시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지 않을까. 한동안 이런 불안감에 시달렸다. 과거는 정말이지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런데 문뜩 이 불안을 넘어서는 불안이 생각을 잠식했다. 계속 이렇게 살면 어쩌지 하는 불안. 당장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없지만 이렇게 계속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정말 내가 바라던 삶일까. 그건 아니었다. 나는 가난하더라도 나다운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쉽지 않지만 과거보다는 현재에, 그리고 미래에 더 집중해 보기로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에게는 과거의 경험에 대한 불안보다는 앞으로의 일에 대한 불안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불안하지만 이 불안을 안고 한 번 더 실업자의 길로 가 보기로 했다.

그다음으로는 지금껏 쌓아온 것을 모두 잃게될 것이라는 불안이 밀려왔다. 일하면서 느끼는 보람, 대상자나 동료들과의 관계, 조직에의 소속감, 일 경력, 등등. 곰곰이 생각해 보면 30대 초반의 나에게는 모두 중요한 것이고, 그래서 내가 지난 몇 년간 애써 이루어 온 것이었다. 잠시 멈추고 새 직장을 찾는다고 해도 이것을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중이었기 때문에 이 두려움은 더 드라마틱하게 다가왔다. 나도 이제 실력을 쌓고 무언가 하나라도 확실한 것을 추구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갑자기 병들거나 사고로 죽지 않는 이상, 나는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날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도 충분히 젊고, 아직은 뭔가 영글어가고 거두기를 바라는 때가 아니라 새로 씨도 뿌리고, 모종도 심어볼 수 있는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조금 늦더라도, 아니, 뭘 대단한 걸 이루지 못해도 지금 행복하면 된다. 그렇게 마음먹기로 했다.

다음 불안은 안주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이 일에, 이 조직에 익숙해졌다. 익숙하다는 것은 편안하다는 말이다. 처음 일을 하던 때처럼 완전히 막연한 순간은 없고 어느 정도 경험도 쌓였다. 너무나 편해서 더 머물고 싶고, 조금은 더 머물러도 될 것 같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적당한 타협점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1년만 더 일할까?', '조직문화는 좀 지나면 바뀌지 않을까?', '다른 사업 담당자로 지원해볼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스스로 불안감을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니 이런 나의 기대는 헛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지난 2년 동안을 돌아보면 상황은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진 것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편하고 좋다고 하기에는 현실이 주는 괴로움이 너무나 구체적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격려했다. 불안하지만 한번 벗어나 보자. 익숙한 것 너머에 새로운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불안을 하나씩 꺼내 놓고 들여다보면서 나는 점점 내 선택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불안해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현실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신용카드를 정리하고, 적금을 든 것이다. 카드는 다음 달에도 내가 계속 일을 한다는 것을 전제로 지급을 미루는 족쇄같은 것이다. 다음 달에 갚아야 할 카드 값이 없다면 나는 이번 달에 퇴사할 수 있다. 할부가 걸려 있는 건수를 확인하고 두세 달 안에 신용카드를 정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적금은 퇴직한 후 아직도 길을 헤매고 있을 1년 후의 나를 위한 작은 연대이다.


이렇게 나의 결심은 조금 더 단단해졌다. 1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를 원망하게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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