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와 나 1
해리는 나의 반려견이다. 지난 3년간 우리는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가장 많은 길을 함께 걷고 가장 많은 마음들을 기대어 살고 있다.
해리를 처음 만난 것은 6년 전 일이다.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나는 휴가를 보내기 위해 잠시 고향 집에 내려와 있었다. 부모님 집 마당에서 강아지 마루와 빈둥빈둥 놀고 있는데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받아 보니 다짜고짜 강아지 한 마리가 있는데 아무래도 우리 집에서 키워야 할 것 같다며 좀 데리러 오란다.
“무슨 개? 우리 집에 개 있잖아.” 마루를 처다보며 퉁명스럽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어느새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동생이 말한 장소로 나갔다. 동생은 보슬보슬한 털뭉치 한 마리와 함께 서 있었다. 친구가 키우려고 데려왔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대신 키울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너무나 귀여운 강아지였지만 딱 봐도 대형견으로 무럭무럭 자랄 모습이었다. '이 큰 개를 누가 키우냐!' 차가운 이성이 벽을 치려는 순간 여기가 어디고 내가 누구지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껌뻑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솜뭉치의 모습에 마음을 홀랑 빼았겨 버렸다.
동생은 다른 가족들이 키우기를 반대할지도 모르니 우선 씻겨서 단장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치밀한 놈.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이미 마음이 뺏긴 나는 “그럴까?” 하며 이 녀석을 덜컥 집으로 데려 가 씻기기로 했다. 집으로 오는 길, 차 조수석에서 앞발을 가지런히 포개고 엎드려 나를 쳐다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렇게 나는 개줍의 공모자가 되었다.
“안 된다” 아빠의 형식적인 반대에 부딪혔지만 솜뭉치는 아빠 회사 마당에서 살게 되었다. 큰 개는 안 된다던 아빠는 그렇게 큰 강아지의 아빠가 되었다. 이름은 원래 주인이 부르던 대로 혜리라고 불렀다. 그맘때 가장 인기 있던 연예인의 이름을 따서 지은 듯했다. 마당 한구석에 혜리의 집을 마련해주고 동물병원에 데려가 동물등록을 하고 예방접종도 했다. 견종은 골든 레트리버이고 대략 3~4개월령 정도 된 것 같다는 수의사의 말에 따라 혜리의 생월은 2015년 10월로 정했다.
이후 혜리는 아빠의 보살핌으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가끔 아빠를 따라 회사 뒷산으로 산책도 가고 사료 잘 먹고 똥 잘 싸고, 황토가 건강에 좋다며 아빠가 집 뒤에 마련해준 황토방 별채에 몸을 비비며 지냈다. 사료를 먹지 않는 날에는 호빵(프라이팬에 구워 먹으면 맛있는 바로 그 호빵)을 주면 맛있게 먹는다는 당연하고도 사소한 일조차 신기하고 기특한 일로 회자되던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아빠는 저녁이 되면 퇴근을 했고 혜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반경 2m의 목줄이 그리는 원 안에 지냈다. 따분한 표정으로 엎드려 있다가 사람만 보이면 벌떡 일어나 담요를 물고 와 꼬리를 흔들어댔다.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 다가가려 하면 기회는 이때다 하고 마구 뛰어올랐다. 사랑이 고픈 건지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는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큰 강아지가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기가 일쑤였다. 담요를 물고 오는 것은 아마도 혜리가 아직 작은 강아지 시절이었을 때 무심코 담요를 물고 오는 것을 본 누군가가 귀엽다며 칭찬한 것이 긍정적인 강화로 기억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으로 굳어진 것인 듯했다. 그러나 이미 훌쩍 커 버린 강아지가 누더기가 된 담요를 물고 오는 것은 더 이상 귀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흥분하여 사람에게 올라타기까지 하니 의도와는 다르게 혜리는 다가가고 싶고 쓰다듬어주고 싶은 이미지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혜리는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부담스러운 대형견이 되었다.
한편 나는 객지에서 내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데려오기에 힘을 보탠 큰 강아지가 어딘가에 묶여서 지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고, 나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지만 많은 시간 집을 비우는 출퇴근 생활자인 내 신세 때문에 혜리를 데려와 키울 생각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가끔 집에 내려갈 때마다 간식을 사주거나 강아지에게 좋다는 노즈 워크 장난감을 만들어선물했다. 매번 산책도 데려갔지만 내가 집에 내려가는 것은 일 년에 2~3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산책길에 마냥 신이 난 혜리 얼굴을 보면서 언젠가는 이 강아지와 함께 자유롭게 살면 좋겠다 생각을 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났고 나는 고향으로 돌아와 살게 되었다. 내려오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지만 인생이 늘 그렇듯 명확한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나도 강아지를 키워야겠다, 아니 혜리를 데려와 함께 살아야겠다 하는 마음은 확실했다. 물론 돌아오자마자 혜리를 데려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함께 살 곳도 마땅치 않았고 나도 여러 가지 정리가 필요했다. 당분간은 혜리를 자주 찾아가 산책을 하며 친밀감을 쌓기로 했다. 그리고 함께 살 집을 지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얼른 혜리를 데려와 우리 집에서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 짓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지난한 일이었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기 전에 우리 집이 완공되었다. 혜리와 함께하는 생활도 이제는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 이제는 함께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바닷가 언덕에 있는 작은 집에서 반려 생활을 시작한 날, 새로운 삶을 살아가자는 의미로 혜리의 이름을 바꿨다. 이미 익숙해진 이름을 아예 바꿔버리면 강아지가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으니 발음은 비슷하지만 좋은 의미가 담긴 이름을 지어주었다. 해리, ‘바다 해’에 ‘마을 리’ 자를 써서 바다 마을에 사는 강아지라는 뜻을 담았다. 그렇게 혜리는 나에게로 와 해리가 되었다.
새 보금자리에서는 또 다른 적응기간이 필요했다. 서로에게 실수도 많이 했지만 그렇게 지지고 볶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우리만의 룰을 정해갔다. 점점 해리가 나를 의지하고 있구나, 나를 보호자로 받아들이고 있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감정이 느껴질 때면 괜히 뭉클해져 해리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마음을 나누고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반려 생활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연으로 시작하여 많은 시간을 돌아 이어진 우리의 끈끈한 반려 생활은 이제 막 3년 차에 접어들었다. 해리는 나에게 다름을 뛰어넘는 우정을 나누는 친구이자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자매이자 일상을 함께 걸어가는 반려자가 되었다. 나는 나의 친구이자 자매이자 반려자인 내 강아지 해리와 함께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