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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앵두 Nov 18. 2017

크루즈 승무원 다이어리

11월 18일

날짜변경선을 넘었다. 17일은 없어지고 18일이 되었다. 앞으로 3번 1시간을 돌리는 날이 남았다. 지구는 참 신기하다. 이런 것들이 참으로 과학적으로 돌아가니까 말이다. 물론, 가끔씩은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기도 하지만. 여튼 오늘은 D-10. 이 사실 자체로도 행복한 날.

예전에도 잠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승객들을 대하는 리셉션에서의 답은 빠를수록 좋다. 사람 심리가 그렇다. 내가 무언가를 요청했는데. 감각무소식이거나, 답이 아예 없거나, 그 답이 너무 느리거나. 그래서 내가 다시 한 번 같은 일로 요청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는 건 승객 입장에서는 유쾌한 일은 아니다.

싱크 파이프가 터져서 카펫이 젖었는데, 함께 양말들도 젖었다. 그래서 세탁을 맡겼는데, 내가 아침에 찾아다 줬는데, 이게 저녁 미팅 때까지 그대로 있고, 다음날로 넘어간다. 왜? 어째서?

다른 이야기인데, 어떤 캐빈에 창문 보수를 하는데 예정시간보다 늦어졌다. 그래서 동료가 확인하러 갔는데, 오늘까지는 끝낼 수 있다는 답을 가지고 온다. 오늘까지 끝내는 거 모르는 사람 있나? 우리가 원하는 건, 승객이 원하는 건 몇 시까지 인 거 정령 모르는 건가?

캐빈에 제공된 휴대 전등 불빛이 약해, 배터리를 갈아 달라 승객이 요청한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온 동료는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고 무심하게 말한다. 이 뒤에 배터리 표시는 안보이는 걸까? 못 본 척 하는 걸까? 아니면 단 한 번도 리모콘 배터리도 안 갈아본 공주인 걸까?

결제할 때 달러는 지폐이외에는 받지 않는다. 이 사실을 잠시 잊은 걸까 아니면 동전 합이 1달러가 되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자꾸 결제일마다 승객이 주는 동전 들고 와서 되는지 안되는지 물어보는 걸까?

승객이 어제부터 컴플레인하고 있는 캐빈이 있는데 테크니션에게 뭔가 확인해야 한다. 그게 마침 내 쉬는 시간이었는데, 꼭 2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 걸까? 나 아니면 리셉션 안 돌아가는 걸까?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의 힘은 어마어마 하다. 승객에게 잘 설명해서 넘길 수 있는 일을 그저 알았다 한마디로 일관해 일이 커졌다. 그 부분을 지적한 뒤 돌아오는 답은, 앞으로는 그럼 나 말고 설명 잘하는 다른 이가 설명하면 되겠네. 이럴 땐 내가 뭐라고 이야기 해야 하는 걸까?

같은 사소한 실수를 자꾸 하기에 지적한다. 그러면 귀찮다는 듯이 Okay 한마디 한다. 헐… 내가 19살짜리인 너한테 이런 대접을 받는 구나. 바에 있는 건 카피 머신(복사기)이 아니라 커피 머신 인걸 상식으로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니? 생각이라는 거… 안 하니?

하루하루를 이런 상황 속에서 산다. 아주 사소한 예만 쓰는데도 뭔가 힘들구나. 내일부터는 인수인계를 해야 하는데 이 상황을 아는 치프가 스트레스 받으면 먹으라고 초콜렛을 준비해줄 정도다. 남은 열흘. 아주 즐거울 것만 같다. 기대되는 구만…………………………. 진짜로…. 정말로…. 겁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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