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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노무사 Sep 20. 2022

직장에서 얻은 행운

지금은 얻을 수 없는 값진 경험

추석 연휴 전날, 오랜만에 전 직장 선배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회사생활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위로가 되어주던 선배들은 퇴사 후에도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선배들과 마음 편히 만나기 위해 오후 휴가를 썼습니다. 휴가를 쓴다고 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에 새벽 1시까지 일을 했어요. 추석에도 자문은 끊임없었고 컨설팅 자료도 만들어야 했으며, 추석 연휴 다음 날 오전에 바로 인터뷰도 예정되어 있어 영 마음의 여유가 없었거든요. 오전에 열일하며 일을 마무리하려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 업무는 ~~ 것이 포함되어야 할 것 같고요. 혹시 000 회사에서는 연락 없었나요?”     


평소와 다름없는 대표님의 전화에 살짝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대표님은 제가 새벽까지 일했는지 전혀 알 수 없고 제 업무상황을 체크하는 것이 당연하죠. 그렇지만 추석 연휴 전날 산더미만큼 일을 받은 기분은 어렵게 산을 올라가고 있는데 짐 가방 하나가 추가된 기분이었어요. 억울한 마음으로 일을 마무리하고 선배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나를 위로하는 사람들


식당에 앉자마자 선배들이 선물을 주셨어요. 갑자기 대학원 축하 선물이라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선물이기에 놀랐고 기뻤습니다. 선물을 받아서가 아니라 가족이 아닌 사람들 중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요. 그리고 그리워졌습니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공감을 받으며 함께 지내던 시절이요. 첫 직장에서 좌충우돌하며 마음이 상할 때마다 선배들에게 속상한 마음을 자주 털어놓았고 그때마다 조언과 위로를 받으며 그 어려운 시절을 버텼던 것 같습니다. 선물을 뜯어보니 눈물이 핑 돌았어요. 수면의 질이 안 좋은 저를 위해 고심하며 골랐다고 하신 선물은 숙면을 도와주는 필로우 미스트였거든요. 올해 받은 가장 큰 감동이었습니다.    


선배들은 저보다 나이도 많고 체력도 없는데.... 심지어 두 분 다 엄청 마르셨어요. 저에게 건강이 최고라며 절 걱정하셨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선배를 만나면 자주 혼술하는 저의 생활습관도 돌아보게 되고 며칠간은 술을 안 먹게 되기도 합니다. 헤어지는 순간이 참 아쉬웠지만 연휴 전날이라 아이들이 빨리 집에 돌아와서 모두 육아 출근을 해야 했습니다.


 


얻을 수 없는 경험


자문과 컨설팅을 업으로 하면서 자주 드는 생각이 있어요. 바로 저는 ‘경험’을 팔면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무 자문은 법적 해석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담당자들은 법리보다는 실무에 어떤 유의사항이 있는지 알고 싶어 하거든요. 자문과 컨설팅을 하면서 쌓은 경험을 공유하고 실무에 적용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례들이 또 제 업무 경험이 되어 다른 일을 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가장 부족한 경험은 ‘관계’입니다. 자문노무사가 되거나 수행 컨설턴트가 되는 것은 공적 관계이고 계약상 갑과 을의 관계죠. 리모트워크가 기본인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동료를 개인적으로 만날 일은 거의 없습니다. 회사가 멀어서 출근을 해도 개인 시간을 할애해서 관계를 형성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집에 오는 것 만해도 1시간 30분이 걸리니까요. 좋은 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지 2년이 되어 갑니다. 마냥 좋기만 한 사람은 없다고 해도 그냥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원래 친한 친구들마저 노무 상담이 필요할 때 연락하는 일이 잦아졌어요.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할지 고민이 될 때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돈, 하고 싶은 일, 동료인데요. 전 직장을 오래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동료들이었고, 그만둬야 했던 이유도 동료였습니다. 퇴사 시점에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몰입해서 좋은 점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가장 큰 것을 얻었습니다. 바로 사람이죠.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일까


좋은 선배들을 만났지만 좋은 선배였나 자문하면 부끄러워집니다. 철저한 개인주의자(이기주의자는 아닙니다) 성향 때문에 후배들과 마음을 터놓고 관계를 계속하진 못했어요. 퇴사하고 축하 연락을 받은 적도 있지만 그뿐이었네요. 아이를 키우느라 일을 하느라 모든 관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인노무사가 되어 거의 막내 역할을 했으니 선배 역할에 대한 학습이 부족하기도 하죠. 그럼에도 배울 점이 많은 선배들을 만나 다행입니다. 경험하지 못해도 모방할 수는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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